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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오키] 홍화 (3.5)

호쟌 2016. 10. 9. 17:26

* 긴토키 x 오키타



홍화

(3.5 편)


 " 형씨는 과거에 뭐 하셨어요? "


단순한 질문치고는 나름대로 타격이 컸다. 현재를 존재하게 하는 건 과거의 행위와 기억이지만, 이왕이면 잊고 싶은 기억들도 있는 법이니까. 뭐라고 얘기해야할까. 선생을 죽인 패륜아? 전쟁에 참전한 양이지사? 아니면 수 많은 친구의 목숨을 잃게 한 비겁한 사람, 혹은 살인귀? 어떤 단어를 내뱉든지 간에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와 당당하게 제시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는 건 꽤나 서글픈 일이다. 곁에 두고 있던 사람을 하나 둘 떠나보내야 할 수 도 있는 일이니까. 


"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았던 사람이랄까. 글쎄, 과거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

" 변태스러운 과거를 지니셨다면 숨기고 싶을 만도.. 심지어 로리라면. "

" 아니라니까!!!! "

" 뭐,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만, 굳이 변명은 하지 않으셔도.. "


붉은 빛의 둥근 눈동자는 왠지 이상한 쪽으로 수긍하고 있는 듯한 빛을 띄지만,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고. 더군다나 이렇게나 하늘이 아름다운데, 굳이 암울한 회색 하늘을 꺼내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냥 내버려뒀다. 차라리 붉게 물든 과거였다면 타오르는 불꽃의 모양새를 빼다박은 듯한 노을 빛이었다면. 모두가 짊어지고 있는 추억의 무게가, 홀로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약속이 너무나도 무거워 잿빛이 되어버린 과거의 하늘이 오늘 따라 숨이 막히도록 무겁고 막연하다. 


' 모두를 지켜줘. '


질식하리만큼.


" 나름대로 어른은 어른대로의 고뇌가 있는 법이다. 요녀석아. "

" 아. 네. "

" 소이치로군은 과거에 뭘 했길래 그렇게 살벌하게 사람을 도륙내고 있었어? "

" 그렇게 아무런 감흥없는 목소리로 물어보기엔 꽤 자극적인 말이 아닌가요. 과거사는 피장파장일테니 묻지 맙시다. 서로. "

" 아아, 그러던지. "


어쩌면 침묵이 서로에게 더 익숙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른하게 퍼지는 노을이 포근하게만 느껴지는 와중에 말소리는 그 분위기를 해칠 것만 같아서. 하루종일 타바스코에 고생한 몸뚱아리를 치유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타바스코의 붉은 색이 떠오르는 것 같지만, 왠지 더하면 속이 쓰릴 것 같으니 확장되는 상상을 멈추고 곁에 앉아있는 꼬맹이를 바라본다. 


" 붉은 색을 좋아하는 건 누나가 노을을 좋아했기 때문인데, 손에 피를 묻히고 살인이 익숙해지면서는 달라지더라구요. "

" 어린 아이에게도 칼을 쥐어주며 살인을 강요하는 세상이 미친거지. "

"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그 붉은 색이 마치 꽃처럼 피어나는 것 같아서. 따듯하기도 하고. "

"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게 정상적인 일은 아니라고 보는데." 

"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


 얼마나 각박한 세상이었으면, 얼마나 어린 아이에게 참혹한 세상이었으면, 죽은 사람에게서 따스함을 찾았겠어요. 어린아이가. 


' 시체를 먹는 악귀가 나온다는 말을 와봤는데 그게 당신이었나요? '


 죽은 시체의 품은 서늘하기 짝이 없고, 처음으로 마주한 살아있는 인간의 살아있는 자의 온기는 죽은 자에게 익숙한 자에게 있어 구원이었는 지도 모른다. 살기를 품지 않은 따스한 어투와 먼저 건네오는 손은 죽어버린 자에게 내린 하나의 동앗줄. 그것을 잡고 올라가는 것은 개인의 의지라 하지만 동앗줄도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한 번의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삶을 지탱해온 의지가 그에 의한 것이라는 것 부터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한 번의 구원과, 한 번의 이별과, 한 번의 약속으로도 설명이 가능할 정도니까. 


" 나랑 많이 닮았네, 소이치로군. "


온기에 허덕이던 것도, 한 번의 구원을 바라보는 것도. 천인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천인을 위해서든, 자신의 뜻을 위해서든 검을 든다는 것은 그만한 의지를 세워올린다는 뜻이니까. 


" 그래도 이왕이면 사람의 몸에서 피어올리는 이내는 내 손을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찾기 보다 좀 더 생산적인 걸 좋아해보는게 낫지 않겠어? "

" 뭐, 이왕이면이죠. 평생 그렇게 살아온 걸 쉽게 바꿀 수 있답니까. "

" 최선이 아닌 차선이라면 언제든지 있는 법이지. 요 녀석아. 시간이 늦었으니까 이만 들어가보지 그래? "

" 그렇게 제 몸을 못 지킬 정도로 바보같은 사람은 아닙니다만. "

" 긴상이 늙어서 피곤해서 그런다. 요새 체력이 말이 아니야. "

" 그런 주제에 로리라니. "

" 소이치로군. 로리가 되느니 차라리 긴토키X오키타의 은밀한 하룻밤.av 가 낫다고 보는데? "

" 블로그 주인 양반의 사심이 잔뜩 들어간 발언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어째서 형씨는 이름이고 저는 성이래요? "


 장난스레(?) 치고 받는 언어들이 가볍게 오가며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한결 느슨해진다. 우는 것보다 웃는 걸 먼저 배운 사람 들처럼 답싹이는 말들은 슬픔을 배고 있으나 드러나지는 않는다. 별 뜻 없는 언사들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건 글 좀 가지고 논다하는 이들, 겪어보지 못한 일을 단지 글로만 접한 이들이나 하는 짓일 뿐. 드러나지 않는 교류는 가볍게 흐르는 표면의 냇물이 아닌 깊게 흐르는 마음의 격랑이다. 말로 내뱉지 않아도 그 격랑이 서로에게 흐르고 있다는 건 말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법. 


" 소고군. 다음에도 찾아오라고. "

" 제대로 이름 불러주시는 겁니까? 하도 기억을 못해서 쓸모없는 몸뚱아리에 인이라도 찍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

" 긴상은 연약하다니까. 그런 건 봐주라고. "

" 하-. 다음에 봤을 때도 이름으로 불러주면 정상참작해볼게요. "

" 어이어이. 무섭다고. "


다양한 색으로 채색된 단어는 필요없다. 화려함은 진중함을 가리는 위장색에 불과하니까.

누군가의 뜻이 담긴 단어에는 묵색으로 이어진 자취가 남는다. 

그만큼 담담하고 명확한 단어는 없다. 그렇기에 더욱 단순하고 형식이 없다.


" 형씨. 다음에 또 봬요. "

" 그러던지. "


그와 나의 관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