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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오키] 홍화 (完)

호쟌 2016. 10. 9. 22:33

* 긴토키 x 오키타



홍화

(完)


" 형씨. 여긴 왠일이래요? 뭐 책잡힐 일이라도 있으셨나봐요? "

" 긴상이 아무리 폐품같은 아저씨라 해도 그 정도는 아니란다. 소이치로군. "

" 조만간 제 이름을 박은 인두라도 제작해야 이름으로 불러주실겁니까? "

" 굳이 그럴 필요 없지. 암, 긴상은 소이치로군의 이름이 소이치로라는 사실을 굉장히 잘 알고 있으니까. 소고군. "


아침부터 파르페를 먹고 왔는지 단내를 여전히 풀풀 풍기며 들어오는 아저씨는 시커먼 제복들 사이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뭐 은발머리 자체도 눈에 띄는 색이지만 시커먼 제복들 사이에 하얀 유카타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게 더 이상하지. 연무장 한가운데에서 누가봐도 수상한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는 이내 어깨에 팔을 걸쳐오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말을 할 때마다 달달한 향이 풍겨오는데 킁킁거리면 변태처럼 보이려나. 


" 소고. 시간 좀 낼 수 있어? "

" 어, 저 보러 오신거였어요? 뭐 마요라가 지랄을 하겠지만, 한 두번도 아니고. "

" 부패한 공무원의 온상이었군. 소이치로군. "


뭐 새삼. 가볍게 말을 끊으며 그의 팔을 이끌고 나서니 시커먼 제복을 입은 시커먼 머리카락을 가진 누군가가 맹렬한 스피드로 날라오는 게 느껴졌으나, 품에 품고 있던 타바스코상을 가볍게 던져주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악-. 소고!!!! 하는 아름다운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으나 가뿐히 무시해주는 센스를 발휘하며 신센구미 진영을 나가자마자 그가 허리에 손을 끼워넣으며 가볍게 자신의 몸을 들어올리는게 느껴졌다. 


" 형씨? 뭐하시는 겁니까? "

" 아무래도 납치라 하는게 좋을 것 같으니까. 시말서 쓰기 귀찮다며. "

" 형씨, 의외로 머리가 좋네요? 그래도 이왕이면 업어주시면 안돼요? 이건 좀 쪽팔린데. "

" 남이사. "


두 손에 가득히 공주님 안기의 아름답고 쪽팔리는 자태로 그에게 안겨가는 기분이란. 나름대로 색다르면서도 은발을 다 뜯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느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왜 생기는 지, 그가 짊어진 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건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억센 근육들이 군살없이 엉긴 단단한 팔이 사람 하나를 짊어지면서도 흐트러짐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그가 건너온 역경이 아득하리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법했다. 


" 그래서, 절 보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

" 음, 지금은 말하기 좀 힘들고 일단 가서 말해줄게. "


얼마나 그에게 안겨있었을까. 일단 가부키쵸가 아닌 것만은 확실해보였다. 그만큼 오랫동안 달려오기도 했고, 그의 숨이 그만큼 가빠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내려놓을 생각은 없는지 허리와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팔에도 전혀 미동이 없었다. 꽤 오랫동안 혹사시킨 것 같아 내려달라 하려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으나, 그의 체력이 얼마나 되는 지 궁금한 마음이 더 강했기에 초반의 쪽팔림은 날려버린 채 온순하게 안겨있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드는 모습이 웃기기도 했고. 


" 후... 다 왔다. "

" 수고하셨네요. 중간에 내려줘도 됐을 텐데 굳이... "

" 아아, 사실 그렇게 무겁지도 않았고, 공사판에 부려먹는 노인장이 하나 있어서 그 정도 노동은 할 만 했달까. 으, 생각해보니까 팔이 좀 아프긴 하네. "

" 엄살부리는 거 보니까 별로 안 힘들어보이네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도 부탁해요. "

" 어이어이, 소이치로군. 두 번 들고 뛰었다간 내 팔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데? 무사에게 중요한 팔을 날려 버리려 하면 안되지 요녀석아. "

 

그러면서도 재미있었냐 묻는 걸 보면 생각한 것 보다는 힘들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가 자신을 내려놓은 곳은 꽤 한적한 공원. 천인도 인간도 없는 한적한 공원에서 뭘 하려는 건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먼저 좀 걷자는 말을 꺼내왔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땀을 흘려서 그런지 흠칫거리는 은발머리가 눈에 들어왔으나 내색하려 하는 것 같지 않아 모른체할 뿐.


- 콜록 콜록


... 내 옷이라도 줘야하나. 나보다 형씨 등치가 커서 안 맞을 것 같은데. 그래도 여기까지 업고 온 건 고맙다고 해야할 것 같은데. 음


" 이거라도 입으실래요? 나름대로 여러겹으로 되어있는 제복이라 하나 정도는 벗어드릴 수 있는데. "

" 긴상은 콜록 콜록... 괜찮으니까.. 쿨럭. "

" 닥치고 입어. "

" 네... "


미련하기 짝이 없다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옷을 위에 가볍게 걸치는 모습을 보면서 작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체형이 다르다보니 그에게 완전히 맞는 옷은 아니었지만 가장 바깥 쪽에 입는 옷이라 그런지 그런대로 봐줄만 하긴 했다. 그런대로 제복이 잘 어울리기도 했고. 반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맹이같은 양아치같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세상 편하게 사는 한량같았달까. 으, 땀냄새나겠다. 


" 소고. "

" 뭐하시는 겁니까? "

" 자, 앞으로 직진. "


품 속에서 꺼내든 안대를 곧바로 씌우는 그의 행동에 나름대로 반항을 하려 했으나 나직하게 제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에 반항을 멈춘 건, 단순한 변덕이었다. 안대를 꼼꼼히 씌우곤 팔을 잡아 이끄는 힘에 뭘 하려는 건지 몰라도 장단은 맞춰주자는 기분으로 몇발자국 걸으니 그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나뭇잎스치는 소리와 바람이 흐르는 소리, 두 사람의 낙엽을 밟는 소리와 그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린다. 코 끝으로는 달콤한 향기와 낙옆에서 나는 축축한 냄새가 맡아진다. 그리고 다가오는 겨울의 향이 묵직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한적한 가운데 흐르는 소리와 냄새 그리고 단단하게 팔을 잡은 감촉이 예민하게 느껴지고 그의 걸음 걸음을 따라 들어감에 따라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을 경험하고 있을 즈음에 그가 멈춰섰다. 


" 다 왔어. 이제 벗어도 좋아. "


그 한 마디에 답답하게 시야를 가둬두었던 안대를 벗자 보이는 건 세상을 가득채운 붉은색. 부드러우면서도 포근한 향기가 가득 채워진 공간. 형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시야를 채우고 멍하니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가 소름돋게 찬연했다. 햇빛이 아스라히 스미는 잎들 사이로 화려하지도 천박하지도 않은 딱 고아한 아름다움을 피어올린 


동백.


그리고 그 붉은 꽃들 사이에서 천진한 웃음을 피어올리는 하얀 남자의 모습. 왠지 한 순간에 손을 뻗으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신기루같아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음에, 그가 먼저 손을 뻗어 가득히 안아오니 그의 품에서 흐르는 향과 동백에서 흐르는 향이 어우러져 서럽도록 따스함에 눈물이 났다. 가슴을 채우는 온기와 단단하게 안아오는 두 팔이 마치 구원같아서. 하나의 동앗줄을 잡은 마냥 그것을 놓지 않고 싶은 간절함에 그의 허리를 꽉 안으니 기분좋은 울림과 함께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소고. 사람의 몸에서 피어나는 홍화는 아니지만, 선물해주고 싶어서 준비했는데. 어떻게 마음에 드시나? 응? "

" 언제 이런걸 찾아낸거래요... "

" 동백에 미친 양반이 하나 있어서 물어보고 다녔지. 어디 경치좋은데 없냐고. "

" 왜요. 왜 나한테 굳이. "


글쎄 - . 닮았으니까?

그게 뭐에요. 이런 상황에서는 좀 더 멋있는 말을 남겨야 기억에 남지, 영 무드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또 다시 꽤나 싱그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꽉 안아오는 팔이 숨이 막히도록 버거우면서도 따듯해서, 그리고 놓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그의 온기를 얼마나 공유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인지하지도 못하는 새에 그가 마음 속에서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혹은 어떤 의미로든. 


" 형씨. "

" 음? "

" 고마워요. "

" 어어? 아. 하하하. 소고군에게서 고맙다는 얘기를 들은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아닌가? "

" 그동안 고마울 일이 있었어야죠. 여튼. 고마워요. "


기대고 싶으면 기대도 돼.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화내고 싶으면 화내고, 지쳐 쓰러질 것 같으면 잠시 어깨를 빌려도 돼. 홀로 가는 길은 외로우니까.

하. 그러면 형씨는 누구한테 기대십니까?

나에게 기대는 사람들과 나에게 맡겨진 약속과 나에게 내려진 구원. 생각보다 괜찮은 버팀목이니까. 수 많은 친우의 목숨과 수 많은 업을 얹은 어깨에 소고 하나 더 올라간다고 무너지진 않아. 

흠. 형씨는 나한테 동백이네요. 

어엉? 

그런게 있어요. 굳이 알려고 하지 말아요. 

뭐, 그러지. 





동백 : 한국에서만 부르는 산다화의 한국식 이름. 보통 일본에서는 가을, 겨울 즈음에 피어남

동백의 꽃말 :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 고결한 사랑 / 비밀스러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