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토키 x 오키타
혼란
( 1 편 )
장난스레 올라간 입꼬리와 휘어접은 눈꼬리가 얄밉게 차이나를 향한다. 나에게는 향한 적 없는, 허물없는 모습. 항상 그 모습을 눈에 담을 때면 가슴 한 켠이 답답해지면서도 이상하게 짜증이 솟구쳐오른다. 차이나를 향해 그 짜증을 풀어내도 그 답답함이 쉬이 풀어지지가 않는 이유는... 글쎄, 아직 알아가는 중이다.
옮겨지지 않는, 땅에 달라붙어 있기라도 하는 듯한 다리를 힘겹게 떼어 올리며 주홍색 머리를 쥐어박는 남자를 향해 천천히 발을 내딛는다. 단순히 작업하는 데에 있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일 뿐이라고 자위하는 마음이 그리 편하진 않다. 아니, 단순히 직업상의 이유만으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칼을 겨누고 날카로운 검의 끝에 목이 날아가는 사이였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당신을 베게 되든 당신이 나를 베게 되든지간에 이런 사이보다는 친밀했을거 같아서.
" 형씨. "
그럼에도 그 자리에 멈춰서서 가만히 서있는 모습에 안도한다. 내 말에 장난치던 손을 휙 들어올리며 여어 - . 왔어? 라며 반기는 모습은 변치않을 정경이다. 내가 변하고 히지카타씨가 변하고 곤도씨가 변해도 그 사람만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지 않을까. 은색의 머리카락이 찬연하게 부서지는 햇빛을 받아들이며 반짝인다. 언제나 썩은 동태눈을 하며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는 항상 꺼져있어 필라멘트가 보이는 전구다, 그래서 그 빛이 발할 때 얼마나 환한지 알 수 없는 꺼진 전구. 그 속에 들여다 보이는 전구를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그 빛이 찬연하게 비춰질 때, 모두가 그 덕을 보지 않던가.
" 부탁할게 좀 있어서요. "
"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익숙하니까 편하게 말하지 그래? "
" 아아, 그래도 일단 형식은 지켜야 된다고 얼어죽을 마요라가 그래서요. "
" 에에~. 안 그런척하면서 은근히 마요라를 잘 따른다니까. "
" 그 자식 알 두개 떼어버리고 오기 전에 그런 말은 넣어두는게 좋을겁니다. "
장난도 못 치냐! 라며 불퉁하게 말을 내뱉지만 장난기가 가득한 눈을 보면서 반박할 의욕을 잃어버린다. 그저 싱긋 미소를 날리며 바주카를 들어올릴 뿐. 미쳤냐는 말을 뒤로하고 삐걱이는 문짝을 열어젖히니 안경이 우렁각시질을 하고 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대로 밟아버릴까 싶다가도 느긋하게 걸어오며 무슨 일이냐 묻는 그의 말에 뭐 새삼. 이라며 어깨를 으쓱인다.
" 해결사에 온 손님이 할 말이 뭐 있겠어요. "
" 소이치로군. 손님이 손님같아야 받아주지, 신센구미는 영 꺼름직한게 매번 끌려다니다가 칼빵 몇 방 맞는게 매사있는 일이다보니 긴상 몸도 걱정되고 응? 요새 찻값도 비싸서 차도 못 내주네. 음, 이해해줘. "
명백한 축객령에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진 않다. 슬슬 꼬리를 말고 빼다가도 들어달라 하면 목검을 들고 이리저리 휘청이면서도 들어주던 사람이 아니던가. 한 번의 거절에 마음 상해할만한 계절은 지나도 한 참 지났다.
" 들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포기해도 돼요. 뭐, 보수는 꽤 짭짤할겁니다. "
" 무슨 일인데? "
꼬부랑거리는 머리를 한 두어번 털면서 나른한 표정을 그려내는 형씨의 모습에 잠시 몸이 굳는다. 검붉은 눈동자에서 약간 벗어난 미간을 바라본다. 살짝 내리깔린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훅 긴장되는 것만 같아서. 가끔 몸이 통제에 벗어나 굳을 때가 있는데, 그의 앞에선 꽤 자주 몸이 굳는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살짝 갸웃이니 몸에 가득히 차올랐던 긴장이 누그러진다. 목을 가다듬고 입술을 적시며 약간은 두서없이 단어를 내뱉는다.
" 일종의 호위라고 할 수 있는데, 높으신 분 자제분이 심심하시다나봐요. 그래서 나돌아다닌다는데, 신센구미만으로는 인원이 부족해서요, "
" 그 쪽 꽤 사람이 많았던걸로 기억하는데? "
" 신입대원들한테 이런 업무를 어떻게 맡겨요. 쳇, 저도 쉬고 있었는데 끌려온거라구요. 형씨, 요새 좀 쪼들리지 않아요? "
" 어이, 긴상이 아무리 쪼들린다고 그런 일을 맡으리라 생각했다면 잘 생각한거다. 누구라고? "
" 허, 한 번을 거절 안하네요. "
" ...집세가 꽤 밀려서, "
근래에 꽤 자주 일을 맡았다고 들었는데, 빠칭코에 들이부었나보네. 가볍게 혀를 차니 딴청을 피우며 눈을 피한다. 아무래도 좋다. 자주 만날 기회도 없는데, 호위를 맡다보면 꽤 오랫동안 같이 다녀야 할테니까. 그럼 계속 은발머리를 의식하게 되는 자신에게 뭔가의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어쨌든 의뢰도 했겠다 싶어 가지고 왔던 자료들을 넘겨주니 귀찮다는 듯이 투덜대면서도 꽤 열심히 자료를 보는 모습이 인상깊긴하다. 마다오주제에 머리는 제대로 박혀있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렇게까지 밉지는 않다고나 해야할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열심히 보는데, 그렇게까지 볼게 많던가? 아, 잠시만 자료를 잘못 준 것 같은데.
" 형씨. 제가 잘못 준 것 같은데요? "
" 응? 아아, 소이치로군. 자료가 큼 꽤 선정적인데? 이런건 어른이 보관해야하는거라고. 큼큼 "
"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 마시고 이거나 받아가시죠? 에로영감. "
되도않는 소리를 지껄이면서도 코피를 닦아내며 건네오는 책자는 굴곡있는 몸매를 지닌 여자가 부족한 옷감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 그림이 인상적인, 아무리 봐도 에로잡지다. 해결사에 가는 김에 곤도씨의 심부름으로 사왔던 잡지. 쯧, 나이도 많으신 분이 이런거나 보면서 코피나 흘리실까. 그 건강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칼은 잘만 휘두르더만, 카부기쵸에 살면서 아직도 여자에 면역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 이름은 히사미츠 하나코.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많은데, 정확한 일정은 없고, 조만간 카부기쵸에도 오긴 할 것 같아요. "
" 호오, 꽤 예쁜데?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혼자 돌아다니는게 말이 안되지. 좋아, 돈만 두둑히 준다면야 24시간 경비도 설 수 있다고. "
자료에 그려진 여인이 눈길을 끈다. 흑발이 허리께까지 흘러내린 여자. 남색의 기모노를 두른 채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은 도도하면서도 고고한 기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확연히 고운 태가 나는 미인이다. 그렇다고 호위대상에 저렇게까지 감탄을 날릴 필요가 있을까. 약간은 복잡스러운 마음은 깊숙히 숨겨놓고 가벼운 말투로 약간의 태클을 걸 뿐이다. 거기까지가 나의 허용범위인 것 처럼.
" 뭔가 불순한 의도가 중간에 끼어든 것 같은데요? "
" 긴상이 어떤 사람인데 불순한 의도로 의뢰를 받는다는 건가. 소이치로군. 긴상은 굉장히 순수한 여성을 지켜야한다는 마음으로... "
" 긴상, 그거 어디서 자주 들었던 대산데요? 헨파이타라고. 귀병대에..."
" 신파치군. 그런건 조용히 넘어가야 작가도 원활하게 글을 진행하지 않겠어? "
" 그러면 제 분량이 줄어든다구요. 태클이라도 걸어야 한 두줄 등장할까 말깐데. "
" 신파치군. 제목에서부터 드러나잖냐. 이 글은 긴토키와 소이치로군에 대한 이야기라구? "
장난스레 말을 이어받다가 보수로 이어진 이야기의 끝을 맺고 다음에 보자며 해결사를 나서니 한 눈에 띄는 은발머리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뒤따라 나온다. 아무리 봐도 다른 일보다 내게 볼 일이 있는 것 같아 걷는 속도를 약간 늦추자 히죽 웃어보이면서 한 걸음에 곁에 따라와 보폭을 맞춰 걷는다. 무슨 말을 하련지 몰라 긴장되는 마음으로 손에 들린 타바스코를 주물럭거리니 능글맞은 목소리가 귀에 흘러든다,
" 소이치로군.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
순간 숨이 멈췄다.
살랑이는 은발이 눈에 훅 들어온다.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며 훤칠한 키에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가 눈에 새기어진다. 하하.. 스리슬쩍 내뱉는 헛웃음이 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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