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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검을 빼들었다. 가져왔던 검은색 제복을 어깨에 걸쳤고, 마지막 남은 한 통의 마요네즈를 품에 넣었다. 그리고 그가 맡았던 집안일이라는 임무를 충실하게 따르며 난장판이 된 집안을 정리하고 아마도 주인을 따라간 듯한 사다하루를 위해 개 사료를 담뿍 담았다. 습격이 있기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검격의 상흔이 기둥에 남았다는 점과 약간의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중간 중간에 존재한다는 점. 그 외에는 금방이라도 사람이 튀어나와 사람의 혼을 빼놓는 화법으로 말을 걸 것만 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남자는 그 모습에 만족스러워하며 밖으로 나섰다. 다시 돌아 올 사람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해뒀으니 사람만 돌아오면 된다. 곧 병원에서 퇴원할 남자를 반겨줄 이들이 필요하다. 


 남자는 가장 먼저 시무라 오타에의 집에 찾아갔다. 신파치의 소식을 전하자마자 언월도를 꺼내들며 투지를 불태웠지만 병원에 빈사상태로 긴토키가 누워있다는 말을 듣고는 해결사로 향했다. 집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하는게 아니겠냐며 웃는 그를 뒤로 하고 야규 큐베와 곤도 이사오가 남자의 뒤를 따랐다. 둘 다 정복 차림은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친구의 입장인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그들의 나쁜 친구들을 지켜야 하니까. 또 언제나 힘겹게 웃고 있는 여자를 위해서, 더 눈물을 흘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두 남녀는 꽤 오랜만에 손을 잡았다. 아니, 잡았다가 곤도 이사오쪽은 한 번 패대기를 당하고 당당하게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다가 남자한테 한 소리 들었다. 


 카구라쪽에는 따로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어 우미보즈쪽에 간단한 정황이 적힌 쪽지를 남긴 이후에 남자는 긴토키가 행동했던 반경을 추리해보며 그의 다음 행로에 주목했다. 그의 행적을 확실히 알기 위한 방책으로 진선조에 들렸을 때 남자를 맞이한 건 소고였다. 평소처럼 안대를 매고 막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 아니었다. 날카로워진 신경을 그대로 내보이며 싸늘한 눈동자를 굴린 소고는 남자의 빈자리는 자신이 채우고 있을 테니 부디 빠르게 모가지를 따오라는 말을 전했다. 넘겨준 서류에는 소고와 진선조 대원들의 필체로 적힌 남자의 이동반경이 적혀 있었다. 끝없이 악연이 회오리치지만 얼굴을 맞대고 몸을 맞대며 뜻을 같이하는 자를 더 이상 적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료다. 진선조의 이름과 국중법도의 지침을 따르진 않지만.


“토시. 에도를 지키는게 아니다. 동료를 지키는 것이다. 동료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에도를 맡길 인물은 없어.”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막부에 찍히면 곤도씨 입장이 난감해질까봐 그러는 거지.”

“내 입장을 신경쓴다기엔 너무 무대포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간단하게 고릴라의 말을 무시한 남자는 고릴라와 큐베에게 당면한 문제에 대한 간단한 지침을 일러준 이후에 홀로 움직였다. 앞에서 남자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두 사람이 뒤에서 한 타를 날릴 것이다. 남자의 생환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표명은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고릴라는 남자를 죽게 내버려 둘 상이 아니니, 딱히 제 목숨에 걱정을 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외려 묘한 흥분마저 얼굴에 맴돈다. 무슨 흥분인지는 남자도 그 감정에 대해 장담하지는 못했다. 단지 신물이 날 정도로 생명체를 베는 일에 흥분 한 것은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어쩌면 긴토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간 느낌에 벅차오른 것이었을까. 


 문득 머리 속에 은발머리가 떠올랐다. 붉은 눈동자와 한없이 지루한 표정이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방금 제가 한 가정에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차올랐다.


-


 남자의 얼굴엔 긴박감이 가득했다. 숨 하나 잘못 내쉬었다간 그대로 포위를 당한 채 총알받이가 될 지도 모르니 최대한 신중에 신중을 가할 상황이었다. 그 부분에 있어 멍청한 짓을 자주 저지르고 다니는 두 사람이 떠올랐지만 할 때는 하는 사람들이니 만큼 믿어야 했다. 믿지 않으면 본인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그런 절망적인 미래에 몸을 던지고 싶을 리가 없다. 그러니 믿어야 했다. 


 남자는 몸을 숨기며 정찰병이 주위를 돌아가는 주기를 들어가기에 앞서 파악했다. 대형 폭력조직, 아니 천인들의 손 발답게 움직임이 기민했다. 천인들도 간간히 모습을 보였고, 지속적으로 거대한 화물트럭이 물자들을 운송하며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신호없이도 잘 짜인 경비는 폭력배라기 보다는 군사조직에 가까웠다. 견회조나 진선조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비밀 군사조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따로 쇼군이 만들어낸 조직일 수도 있으나, 도쿠가와 시게시게는 이런 군 조직을 만들어 낼 위인이 아니었다. 아마도 천인들과 손을 잡은 막부의 간부들이 경비를 들여 만들어낸 조직인 듯 했다.


 삼엄한 경비의 순찰 과정을 눈에 담던 남자는 잽싸게 몸을 움직이며 경비들의 동선에 맞춰 그가 목표로 한 존재를 낚아챘다. 모든 이들의 눈이 돌아가는 시점을 노려 납치한 남자는 준비해뒀던 줄로 존재를 묶은 이후 가볍게 그와 닮은 꼴로 위장했다. 가장 그와 체격이 닮은 존재를 야마자키를 통해 파악해 둔 터라 행동이 빨랐다. 그 이후로는 삼엄한 경비 사이로 몸을 놀렸고, 빼앗은 경비카드를 긁고 안으로 몸을 날렸다. 시의적절한 움직임에 별 다른 경계의 빛은 띄지 않았지만 주변의 감시 시선은 꽤나 삼엄했다. 그 덕에 그들이 넉넉한 정을 쌓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 지도 몰랐다. 적어도 남자의 정체를 확신할 만큼 그를 주의 깊게 볼 만한 사람도 없을 테니까. 


 남자는 처음보는 환경 속에서도 주위를 확인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보이는 데에 주력했다. 대신에 귀를 열어둔 채 신파치, 카구라외 사람들이 납치된 행방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어이, 거기. 어디로 가는 거야? 이번에 운송차량 들어오는 쪽은 그 쪽이 아닐텐데?”


찾기도 전에 들통나게 생겼다. 


“하..하하. 머리카락이 눈을 찔러서 방향을 잘못 잡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X됐다.


“그러게, 머리를 좀 잘라야겠네. 뭐 방향도 잘못 든 김에 아래층에 내려가서 보고서 좀 가지고 올라와.”

‘어이!!! 이런 말에 속는 거야? 속는 거냐고!!!! 군기가 들었다 했더니 이런 데에선 왜 이렇게 허술한건데!!!’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머리는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하라고. 내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머리가 날라갔을 테니까 조심 좀 하고.”

“신경 써주신 점 감사합니다.”


 전혀 긴장하지 않은 척 몸을 돌린 남자는 삼엄한 경계 속에서 꽤 편안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한참 안쪽으로 들어간 남자는 강하게 검을 쥐며 슬슬 코를 자극해오는 피비린내에 미간을 찌뿌리며 살기를 내세웠다. 감각을 끌어 올리자 발자국 소리외에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피비린내에 배어 몸에 젖어 들어왔다. 고문에 의한 신음소리. 피비린내에 섞인 썩은 내. 어쩌면 지금 가는 쪽이 고문실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몰랐다. 빈틈없이 찔러 드는 눈길을 무시하고 가장 깊숙한 안쪽으로 들어서자 살벌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두 명의 천인이 그의 행보를 저지했다. 


“여기까진 무슨 일이지.”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보고서를 가지러 오게 되었습니다.”

“보고서? 보고서는 담당자가 따로 있다.”


 한층 경계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남자는 그럼에도 태연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손에는 식은 땀이 가득 찼으나, 남자의 얼굴에는 그런 기색이 따로 보이지 않았다.


“담당자가 직접 제게 명령을 내린 사안이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잠깐 대기.”


 앞에서 남자의 행보를 막은 천인 두 명은 무언가의 사인을 주고 받고는 무전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는 듯 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눈빛으로 남자 쪽을 보면서도 무전을 통해 전해져 오는 정보로 살벌한 눈빛을 누그러트렸다. 남자는 긴박한 상황이 한차례 지나갔음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가 대기를 하고 있는 동안 육중한 문 앞에 서 있던 천인 중 하나가 안 쪽으로 들어가며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철문이 느릿하게 열렸다. 그 사이로 비릿한 피냄새와 선명한 비명소리가 귀와 코를 자극했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검은 남자의 눈동자가 보다 깊은 빛을 보였다.


“인간외의 다른 종족을 수집하게 되어 유감이라는 말을 전해줬으면 좋겠군. 인간과 야토가 같이 살고 있을 줄은 예상치도 못한 일이라.”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전해드릴 수 있으면 말이야.”

“네?”

“아무리 그래도 암살조를 몇 번이나 보냈는데 아직도 네 신상에 대해 몰랐겠느냐고. 히지카타 토시로. 진선조의 귀신부장이라지?”


남자의 등골을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꽤 살벌한 살기, 혹은 악의. 혹은 절망. 

순간적으로 마요네즈가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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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출 수가 없어서 빤히 바라보는 붉은 눈을 피한 적이 많았다. 소고와 같은 색의 눈이지만 오랜 기억을 담아 둔 붉은 색 눈은 열정보다는 과거의 혈로를 더 많이 닮은 것 같아서 바라보기 부담스러웠다. 나름 꽤 다사다난한 길을 걸어왔다고 자부하지만 가시아귀따위가 백야차 앞에서 힘들다고 칭얼대는건, 말 그대로 투정에 불과할 뿐이니까. 자신이 잃은 것은 타의로 인한 가족간의 절절한 애정일지도 모르지만, 남자가 잃은 것은 자의로 인한 구원자의 죽음이었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퍽이나 거대한 희망, 악이 되어 돌아 온 구원자가 남겨 둔 마지막 희망의 취급을 받고 있으니 그에게 이런 저런 불편을 토로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앞에선 더 완벽해지려 노력했고, 사소한 트집을 잡아대면서도 그보다 모자라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더 나은 환경에서, 더 편안하게 자라 온 주제에 그 누구도 쉬이 걷지 못했던 험로를 걸어 온 남자보다 모자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미친듯이 검을 휘둘렀고, 미친듯이 수련을 했으며 악연으로 이어진 인연이 어느덧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한 동지애가 될 때까지 남 모를 대결을 혼자서 치뤘었다. 남자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는 지도 모르지만. 그 길을 통해서 강해질 수 있었고, 사선을 넘나드는 경험을 통해 어렴풋한 남자의 강함에 동정 아닌 동정을 하게 되었는 지도 몰랐다. 


가벼운 목검과는 달리 그 영혼은 천근보다도 무거운 남자는 라이벌이자 스승이었다. 그리고 넘어서야 할 벽이자, 넘어설 수 없는 한계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남자가 가진 강함이 정확히 무엇이기에 남자를 자신은 이길 수가 없는 것일까. 아무리 투지를 불태우고, 검을 휘두르며 수련에 박차를 가해봐도 그를 이길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전장에서의 경험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을까. 자신도 전장 못지 않은 전투를 해왔었건만 그 정도로도 부족할 만큼 경험이 쌓여있는 사람이라는 것일까.


“잠복 근무다. 주변에서 잠복을 해도 상관은 없지만 꽤 오랫동안 머물 예정이기로 악연도 인연이라고 이쪽으로 정했는데, 왜 불만 있나?”

“어이, 바보자식아. 경찰이 눌러앉아 있으면 영업이 방해 되는 거 몰라? 그런 부분까지 감안했을 때 의뢰비가 좀 적다 싶은데?”

“한 달 내내 버는 돈을 조사해보고 내린 결론이다. 실제 네가 한 달 동안 벌어들인 돈보다 많은 돈이니까 받고 의뢰도 승낙하지 그래.”

“하.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요 녀석아. 너 같은 놈이 나랑 같이, 그것도 동거를 한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던지. 어이, 돈을 많이 줘도 이 의뢰는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돌아가.”


본 목적은 지속적으로 치안에 위해를 가하는 집단을 잠복수사하기 위해서였지만, 야마자키가 아닌 자신이 온 이유는 궁금증의 해소에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의 행동이나 활동반경을 면밀히 살피다 보면 그의 행동에서 어떠한 단서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더불어 그의 무의식적인 습관 중 그가 그렇게까지 강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날 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가장 근거리에서 그를 살피기 위해 잠복수사라는 핑계를 대고 해결사에 몸을 의탁하려 했건만 뺀질거리는 얼굴로 단박에 거절의 의사를 표하니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었다. 꼬맹이랑도 동거한다고 들었는데 남자 하나 들이는게 그렇게 어렵냐! 신변의 위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잠시 장소를 빌려 달라는건데!


“에이, 이야기라도 한 번 들어보죠. 그래서 히지카타씨 누굴 잡으려고 하는 건데요?”

“하루사메 지부들 중에서 꽤 악질적인 단체가 하나 있는데, 요 근방에서 약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인신매매단이라더군. 주로 아이들을 많이 노리는 편이지만 성인들도 꽤 많이 끌려간 모양이야.”

“월급을 그만큼 처먹으면서도 그거 하나 아직까지 처리를 못해서 나한테까지 들러 붙으려고 해? 젠장, 의뢰비는 이 정도로 하고 집안일까지 한다고 하면 이 집에서의 잠복도 허락해주지.”


귀신부장주제에 설마 거기까지 용인하고 받아들일 리 없다는 듯이 단정짓고 말하는 놈의 얼굴에는 능글맞은 웃음이 가득히 떠올라 있었다. 아쉽게도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둔영의 청소는 당번제다 보니 이래봬도 집안일은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가볍게 그의 제안을 승인하자 얼굴이 팍 일그러지며 포기했다는 듯이 돈을 챙기며 놈은 밖으로 나갔다. 이해하라는 듯이 신파치가 눈빛을 보내왔지만, 꽁한 누구와 달리 이 정도의 박대에 움직이기엔 소고의 괴롭힘을 너무 자주 당해 별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심하게 편안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가볍게 마요밥이나 해먹고 제 앞으로 배당된 방이나 청소하면 될 듯 싶었다. 


* 마요의 수사일기

- 마요 1일


대상은 매우 게을러 터졌다. 시무라 신파치가 오기 전 까지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일어나기 전에 가볍게 정리를 하려고 집을 둘러 봤지만 꽤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다. 시무라 신파치가 정리를 하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사무실로 이용되는 만큼 적당히 치우며 사는 것 같다. 없이 산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밥솥은 두 개나 보유하고 있다. 대략의 설명을 들어보니 아마도 우미보즈의 딸 카구라를 위한 밥솥이라 했던 것 같다. 야토족이라 위장이 4개라는 썩을 개그를 듣고 넘겼던 이야기지만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시무라 신파치가 온 다음에는 대상도 배를 벅벅 긁으며 일어나 익숙하게 밥을 하곤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응시한 이후에 점프를 들고 오전을 보냈다. 창 밖을 내다보며 대상과 잠복수사를 동시에 감행하고 있을 무렵 대상은 간간히 찾아오는 카부기쵸의 주민들과 대기하고 있었다는 카츠라 코타로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며 오후를 보냈다. 하루종일 집에 붙어 있으면서 하는 일이라곤 코딱지를 파거나 음담패설을 지껄이는 것이 전부였으며 따로 수행을 하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동야호를 확인해 본 결과 손때가 반질반질하게 묻어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나를 의식해서 수행을 하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외에는 파르페를 매우 좋아하며 내 보기엔 적과 맞서 싸우기 보단 당뇨로 죽는 게 더 빠를 듯하다. 가지고 온 마요네즈 한 통을 사용했다. 


- 마요 2일


대상이 움직였다. 잠복수사라는 핑계로 붙어먹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의뢰라는 것 같았다. 같이 지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카부기쵸에서 대상을 여태까지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할 정도로 대상은 모든 이들과 안면을 트고 지내는 듯 보였다. 해결사라는 타이틀은 잘 몰라도 사카타 긴토키라는 비루한 인간을 아는 사람들은 많았다. 찾아오는 이들도 가지각색, 찾아오는 이유도 가지각색. 더불어 에도 전체를 아우르는 인맥은 기가 질릴 정도였다. 우미보즈와도 면식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거물들과 얼굴을 트고 있으면서 공원의 노숙자들과도 친한 존재. 그가 추구하는 강함이라는 것에 대해선 정확한 감이 잡히지도, 그의 강함이 어디에서 오는 지도 알 수는 없지만 인맥자체 하나만 가지고 세계를 재패하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백야차라는 거물급의 양이지사인 주제에 태연하게 진선조와 견회조와도 인연을 맺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배짱도 두둑하고 배포도 크다. 그런 주제에 돈에 쪼들려서 주변에 돈을 빌리고 다니는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어쨌건 간에 사소한 일은 아닌 듯 하루종일 집에 박혀 나른한 하루를 보내던 해결사들은 저녁에서야 들어왔다. 약간의 박투가 있었는지 상처가 드문드문 나있는 듯 했으나 피곤하다며 바로 자러 들어가는 걸 보니 그다지 큰 상처도 아닌 듯 싶다. 가지고 온 마요네즈 두 통을 사용했다. 


- 마요 3일


소고가 방문했다. 뭔가 어마무시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사라졌지만 보고를 하러 온 것도 개인적인 의뢰를 하러 온 것도 아니면서 어째서 방문을 했는 지는 좀 의문이다. 오늘 온 의뢰인은 실종된 아들을 찾아 달라는 젊은 여성이었다. 한 쪽에는 안대를 하고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성이었는데, 대상은 귀찮다는 듯이 집에나 가라며 여성을 막무가내로 밖으로 내보냈다. 여성은 끌려 나가며 칭코라는 아들을 찾아 달라 외쳤지만 알만 있어서는 봉이 없어서 안 된다며 네오 암스트롱 사이클론 제트 암스트롱 포나 박으라는 소리를 지껄였다. 큐베공은 언제쯤 남성의 분신에 대한 욕망을 버릴 지 좀 고민 되는 부분이었다. 나중에 국가기관을 통해 명령이라도 내리면……. 음 좋지 않은 상상이다. 그 외의 대상의 일과는 별 볼일 없었다. 아침엔 케츠노 아나를 보며 시작하고 점심엔 파르페를 먹으며 저녁엔 이를 닦은 이후에 내게 잠복과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는 방으로 기어들어가 잤다. 잠복이고 나발이고 간에 진전이 보이질 않는다. 가지고 온 마요네즈 세 통을 사용했다. 


- 마요 4일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창 밖만 보는 것도 질려 대상에게 과거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대상은 코를 파며 별 일 없었다는 말을 전해왔다. 수련을 하느냐 물으니 더 이상 나아가고 싶은 의욕이 없다 전했다. 다만 자신에게 다가 온 행복을 놓칠 생각은 없다고,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 다시는 들지 않겠다 했던 검을 들었던 것이라고. 진검을 들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으니 무거워서 들지 않는 것일 뿐이라 했다. 목검으로 기계를 부수고 광선을 튕겨내는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냐 물으니 만화적 설정이니 깊게 파고들지 말라는 네타 발언을 지껄였다. 배고프다며 배를 싹싹 비비고는 밥을 먹으려 하기에 허기가 저 같이 밥을 먹었다. 딸기 우유를 먹기에 마요주스를 먹었다. 대상은 여태까지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신변을 요구했다. 개인적인 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하니 지금까지 도와준 경력을 생각해서라도 알려달라 했다. 카부기쵸 내의 인물들만 선별해서 건네주고 나니 남자는 꽤 심각한 얼굴로 둘러 보고는 저녁에 잠시 나갔다 오더니 한 자루의 진검을 들고 왔다. 척 보기에도 명검을 들고 온 그의 눈은 더 이상 사카타 긴토키가 아니었다. 백야차. 백야차였다.


- 마요 5일


잠복수사의 대강의 실마리가 보인 날이다. 어제 하루 종일 집에 들어오지 않아 대상에 대한 관찰 일지는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대상은 하루 종일 꼬맹이 둘을 내게 맡겨두고 어디를 배회하다 온 건지 온 몸에 자상이 가득했다. 심하게 베인 곳은 없었으나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 온 그에게서 풍기는 피냄새에선 위험한 향기가 풍겨왔다. 그렇게 집에 들어오는 일이 많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익숙해 보이는 꼬맹이들은 남자를 안에 눕히고는 내게 도움을 청했다. 테러조직에 대항하고 치안을 담당하는 만큼 부상과 동료의 죽음을 달고 살아 부상에 대한 대처 정도는 할 수는 있었으나 의문이 들었다. 내내 같이 있는 동안에는 그가 위험한 의뢰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어디서 저렇게 다치고 온 것일까. 혹시 남 몰래 검술의 비전이라도 훔쳐오다가 저렇게 다친 것일까 싶어 시무라 신파치에게 물어봤으나 그들도 사카타 긴토키가 어디에서 그렇게 다치고 왔는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저녁 즈음해서 대상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몇 명의 신상명세가 적힌 종이를 내밀며, 잠복수사에 도움이 될 서류라 했다. 하루사메 휘하의 조직들과 카부기쵸와 에도 주변에서 암약하는 조직들의 중견 보스급 정도 되는 자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보기 좋게 나열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물으니 단지 눈에 띄었을 뿐이라는 말로 자세한 사정에 대한 물음을 일축했다. 그 이후 대상은 점프를 사러 갔다 오겠다며 밖으로 나섰다. 부상을 입은 몸으로 나서는 그가 걱정이 된다며 시무라 신파치와 카구라가 그의 뒤를 따랐고, 모두 나가있는 사이에 나이 드신 할머니께서 들어 오셔 하얀 파마머리에게 괜한 일로 명 줄이지 말라는 말을 전해달라 하셨다. 그 말을 전하니 대상은 울분을 담았으나 이미 깊은 속에서부터 갈가리 찢긴 고독을 아주 잠깐 들어 보이며 손자를 빼앗기셨다는 말을 담담히 내뱉었다. 대상은 특별히 공을 탐하지 않았다. 야마자키가 간단한 정보를 보내왔다. 두 개의 정보를 분석해 본 결과 대강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가지고 온 마요네즈 다섯 통을 사용했다. 


- 마요 8일


대상과의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대상은 내게 자료를 보낸 이후 다른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항상 혼자서 꼬맹이 둘을 남겨두고 모습을 감췄다.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도 대상은 오지 않았다. 꼬맹이들은 카부기쵸 전체에 연락망을 돌려 대상을 찾자는 얘기를 꺼내왔고, 나 역시 진선조에 연락을 넣어 대상의 위치를 알아 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대상의 위치는 파악되지 않았다. 야마자키가 보내온 서신에 의하면 아무래도 요 근래 지속적으로 일어났던 폭력조직 와해사건에 아마 대상이 연루되어있는 듯 했다. 대상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하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대상이 사라진 사이에 지속적으로 보고 되던 천인 산하의 폭력조직의 유입이나 치안의 하락이 급속도로 감소했다. 그와 더불어 해결사에 침입해 들어오는 자객들이 늘어났다. 가면 갈수록 응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적인 향상이 일어나고 있다. 꼬맹이 둘을 지키기 어려워 시무라 오타에씨와 함께 야규가문으로 피신을 보냈으나 해결사는 이 정도로 뒤로 물러서지 않는 다며 거뜬히 한 사람의 몫을 해내며 곁에 붙어 있다. 아마 대상과의 유대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가지고 온 마요네즈 열 통을 사용했다. 슬슬 마요네즈가 바닥을 보인다.


- 마요 10일


두 꼬맹이가 잠든 틈을 타 대상이 방문했다. 정확히 말하면 어정번중의 핫토리 젠조의 손에 들려 피떡이 되어 집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 물으니 막부의 일원들이 대상에 대해 고깝게 생각하는 듯 하다며, 홀로 천인들을 상대하려 하는 무식한 놈이라 죽기 전에 데리고 온 것이라 했다. 더불어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며 몸을 숨겼다. 예전에 감아 준 붕대는 이미 떨어져 나갔고, 강대한 체력이 아니었으면 죽었으리라 생각이 될 정도로 상처가 많았다. 고문이라도 받은 것인지 깊은 화상도 군데 군데 눈에 띄었다. 머리는 물에 젖어있는 것으로 보아 물고문도 당한 것 같다. 상처가 더 벌어질 것이 염려되어 가벼운 소독과 응급처치만 해둔 상태로 잠복이고 뭐고 때려치고 병원으로 미친듯이 달렸다. 응급실을 박차고 들어가 살려내라고 고함을 질렀다. 아직도 목이 아프다. 대상은 시끄럽다 요 녀석아. 기차화통이라도 삶아 먹은거냐. 한 마디를 남기고 기절했다. 묻고 싶은게 많았다. 왜 내가 해야 할 일은 당신이 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당신은 검을 휘두르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빛나는 것인지. 묻고 싶은게 많았다. 지금은 적어두고 마음속으로 물어보지만, 당신이 일어나 백야차가 아닌 해결사 긴토키로 돌아오면 물어 볼 것이다. 그러니까 부디 그 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기를. 


아침에 한 차례의 습격이 있었다. 병원에서 복귀하는 와중에 있었던 습격이었으며 그로 인해 2명의 피해자가 추가되었다. 피해자의 이름은 시무라 신파치, 야토족의 카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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