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토키 x 오키타



편애

(1 편)


 입가에 걸린 미소가 거슬린다. 정확히 말하면 검은색 머리카락 자체가 세상 거슬린다. 두 눈을 일그러트리며 그 쪽을 바라보지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쪽을 무시해주는 모습도 거슬린다. 저보다 상사가 아니었다면 저 머리카락을 대머리가 될 때까지 뜯어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 누님이 저 녀석을 좋아하지만 않았어도 살인 청부업을 불렀을 지도 모를 일이다. 소고는 머리를 한 번 헝클어트리고는 얇게 그를 흘겨보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눈에 보이는 글자가 근 날개라도 달아 놓은 듯이 날아다니지만 평소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번 분기 성적이 안 좋다고 잘릴 위기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래서 지랄 맞은 상사에게 오지랖 넓은 쓴 소리 한 번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괜히 연약한 누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여러 이유로 자리 잡고 앉아 빠른 속도로 경영 계획서와 실적을 비교 분석해갔다.

 

과장님. 점심은요?

저는 패스요. 아까 부장님이 콜 해서 갔다 와봐야 할 것 같아요.

. 수고하세요. 따로 사다 드릴까요?

그럼 도시락이나 하나 사다 주세요. 부장님이랑 먹다간 체할 것 같아서.

 

목을 졸라 보이며 웩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은방울 짤랑 이는 웃음소리를 내며 여직원들이 몰려나갔다. 아마도 꽤나 많은 도시락을 선물로 받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건 그거고 콜이 왔으니 부장새끼 면상 짝을 봐야 하므로 반쯤 처리된 작업을 정리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다들 점심식사를 하러 나갔으니 부서 내에서 인기척이 느껴질 리가 없다. 방문객인가 싶어 칸막이 위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복도 그림자에 가려진 인영 하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쪽을 한 번 바라보고는 사라졌다. 수상한 인물이 건물 내에 들어온 건가 싶어 경비에 연락을 취해두고 회의실로 향하니 은근한 단내가 주변에서 풍겨왔다. 의아해하며 안으로 들어서자 거지같은 검은색 머리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꽤 심각해 보이는 고릴라 본부장이 이쪽을 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뭡니까.

, 오키타 과장. 혹시 입사한 이래로 사장님을 뵌 적이 있나?

아니요. 저 같은 말단 직원이 감히 올려다 볼 수나 있는 분이시랍니까. 본 적 없습니다.

……. 본부장님.

본인의 뜻에 따르는 게 좋겠지.오키타 소고. 사장님께서 오키타 소고 과장을 비서팀으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려 인사이동이 이루어진 상태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인사이동이니만큼 원한다면 거절해도 상관은 없어. 그로 인한 불이익은 쪽에서 덜어줄 수 있으니 이와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주겠나?

? 사장님이 저를 어떻게 알고 지명하십니까? 명령을 전달하는데 있어 오류라도 발생한게 아닙니까?

 

그 때 처음으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굵직하나 한없이 나른한 목소리. 안정적이고 부드러워 듬직하게 등을 기대게 만드는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울려왔다.

 

글쎄. 명령이 잘못 전달된 건 아닐텐데.

누구십니까.

 

곱슬기가 있는 금색 머리카락. 피곤이 내리깔린 붉은 눈동자와 나른하게 뻗은 눈매. 날큰한 콧대와 얇고 유혹적인 입술. 여자들이 환장할 것 같이 생긴 외모와 두툼한 목에서 뻗어 나오는 굵직하고 담담한 목소리. 긴 다리와 판판한 가슴팍, 넓은 어깨에 작은 머리통까지. 장난스레 접히는 눈매가 가벼운 주름을 만들며 뇌세적인 미소를 보인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홀릴 법한 외형은 꽤 매력적인 미형이다. 은은하게 외투에서 풍겨오는 초콜릿 향이 토바코 냄새와 섞여 농염하다. 질식할 정도로 강한 향이다. 느긋하게 누워 자웅을 겨루는 늑대무리를 보는 사자의 느낌이 든다.

 

적어도 당신보다는 높은 사람. 그리고 그쪽들이 날고 기어도 감히 쳐다도 못 볼 정도로 높은 곳에 있는 사람.

 

입술이 비틀려 올라가며 나른한 곡선을 만들어 낸다. 붉은색. 홍채가 띠는 색도 붉고, 보드라운 입술 선이 그려내는 색도 붉다. 어쩌면 자신감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깔끔하게 떨어진 정장 끝단을 보던 소고는 위를 올려다 보며, 포만감에 젖은 게으른 사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사자는 다른 수사자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으며 경계선을 그은 채로 검은 머리와 대치하지만, 단순히 놀아주는 꼴로 보일 뿐이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이 이리저리 툭툭 쳐보며 쥐가 한 번이라도 고양이의 코끝을 할퀴길 기다리는 것처럼. 그래서 쥐가 한 번 돌아보면 그를 빌미로 잡아 명줄을 눌러버리기 위해서.

 

어떤 분이신지 직접적으로 얘기해주지 않으시면 저희는 모릅니다. 명확하게 본인의 소개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사카타 이사장과 각별한 사이. 킨이라고 해두면 되려나.궁금하면 위쪽에 물어보던지.참고로 날 보낼 정도로 의지가 확고하다는 뜻이니까 괜히 사카타 심기 건드리지 말고 그의 말대로 하는게 좋을꺼야.

이사장님께서 이번 일에 관련이 있으신 겁니까?

글쎄.

 

크림 같은 분위기의 부드러우면서도 선한 미소가 위압적으로 이 쪽을 짓누른다. 하나 둘 내려올 때는 가볍고 느낌도 없는 눈에 불과하지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제 무게로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 없는 눈처럼. 남자에게도 성적인 매력을 풍겨대는 킨의 미소는 어쩐지 모르게 대항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속에서 훅 치고 올라와 차마 대처하기도 전에 중심이 무너지는 무언가가. 계속 보기 어려워 돌아보니 마요라와 고릴라 상사가 보인다. 멍한 얼굴에 억눌린 표정이 가관이다. 아마 나도 저런 얼굴이지 않을까 싶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 늘상 봐오던 얼굴에 단순히 한 사람이 더해졌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킨의 존재로부터 어긋남이 시작되어 평범함이 비틀린다. 불편하다.

 

눈동자를 도록이며 분위기를 살피지만 그 자체로 느긋해보이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좌불안석이 따로없다. 위에 연락을 취해본다던 고릴라는 찡그린 얼굴로 이쪽을 바라본다. 아니 내 뒤에 있는 사람을 바라본다. 대단하신 양반이라는 결론이 난 모양이다. 반박할 새도 없이 강제적인 인사이동을 받아들이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데. 더군다나 저런 사람 밑에서 일하면 왠지 모르게 고될 것 같단 말이야. 내가 언제 마이페이스가 아닌 적이 있던가. 잠시간 저 대단하신 양반의 페이스에 눌려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입을 열려는 순간 어깨에 묵직한 손이 하나 올라온다. 습윤하다. 그의 분위기가. 그의 손길이. 그의 눈빛까지도. 음습하기 짝이 없다.

 

신비주의 컨셉이랍시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는 하지만 그가 없으면 이 회사도 안 돌아가겠지. 실권은 그가 다 가지고 있으니까. 곤도. 한 명을 살리려다 전체를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책임자라면 잘 알고 있을 거야.

전 아직 하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아아, 정 하기 싫으면 나중에 긴토키 면전에 대고 하기 싫다고 말하면 될 걸? 그 친구 정에 약해서 해달라 하면 다 들어줄 지도 모르지.

 

재미있는 친구라니까. 라는 말을 덧붙이며 어깨를 두어 번 두들긴 킨씨는 그대로 회의실을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섰다. 구두소리가 멀어지는 동시에 차올랐던 숨을 내쉬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앞을 보자 골치아프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린 두 사람이 보인다. 순간 의문이 든다. 반쯤 강제적인 인사이동이라고는 해서 반발심이 매우매우 솟구치는 것은 사실이나 저렇게 까지 거부할 만한 상황인가? 오히려 승진할 수 있는 기회로 보이는데, 이사장쪽이라면 돈도 많이 줄테고. 약간 뒤가 구린 것 같아서 꺼름직하긴 하지만.

 

대체 저 사람은 누굽니까?

사카타 긴토키의 수행비서라고는 알려져 있지만, SG그룹 실무책임자. 쉽게 말해서 SG그룹 실권자 정도 되는 사람. 킨이라고 해서 설마 설마 했는데, 사가루 킨일줄이야.

오키타군. 오키타군이 특채로 이 팀에 들어왔듯이 사가루전무님도 어린 나이에 이사장님 수행비서로 특채되었다가 전무의 자리를 맡게 되었지.중요한건 사가루 전무님이 오실 정도라면 이 인사이동을 이사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나 다름없다는 건데. 내 손을 떠난 문제나 다름없구만."

설마. 이사장이나 되시는 분이 어린 놈 하나 데리고 가겠다고 명령을 내리겠습니까? 아까는 사장님 명령이라면서요.

이사장님께서 사장님에게 명령을 내리셨을 지도 모를 일이지. 오키타군, 내가 손을 쓸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 미안하네.”

 

검은 머리가 이쪽을 마뜩찮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아무리 엿 같은 부장이라고 해도 나름대로 팀을 챙기는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반응이니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한 편으로는 저런 엿먹은 표정을 짓게 만드는 이사장이란 작자를 리스펙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들기도 하고. 말이야 이사장이지 이사들 중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초기에 기업을 창설하고 그룹을 만들 때부터 이사장을 역임해오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SG그룹이 생겨진지 꽤 오래된 만큼 이사장도 몇 번 바뀌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명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 이사장을 뽑는 기준이 무엇인지, 어째서 얼굴을 들어내지 않는 건지, 그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 이번 명령으로 존재의 유무는 밝혀진건가. 하여간 나이, 성별, 학력 그 무엇도 명확하지 않은 두루뭉술한 존재다.

 

단지 그가 있음으로 인하여 SG그룹이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입사한 이후로 줄곧 들어왔던 말이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사가루 전무, 그 이전엔 이하키 상무등을 통하여 의견을 전달하곤 했지만, 결론적으로 그가 나서서 되지 않았던 일이 없었고, 그룹이 기울어져 갈 때마다 손을 썼던 것도 사카타 이사장이었다. 권력 뒤에 몸을 웅크린 거대한 지배자. 신비롭기 짝이 없는 권력자. 얼마나 신비로우면 그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와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나름대로 사내에 도시괴담 급인 존재다. 사카타 이사장은. 더불어 사가루 전무가 비서실장이었을 적에 이사장의 밤시중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기도 하고.

 

, 상관없습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가루전무님 같은 미남이 옆에 있는데 굳이 저를 건드리려고 부르셨겠습니까. 농땡이 피우는 놈 하나 잡아가려니 생각하면 되겠죠.”

하긴 전무님이 잘생기긴 잘생겼어. 남자라도 빠질 것 같이 생겼더라고. 나도 직접 뵌 건 처음인데 정말 놀랐다니까.”

그런데 그럼 전 앞으로 어디로 출근하면 되는 겁니까? 짐도 다 빼야 할 텐데.”

아마 여기서 사용하던 짐은 필요 없을거다. 위에서 후임도 선정해놨고, 정리하던 서류들만 이쪽에 넘기고 인사부로 가봐. 그 쪽에서 인수인계받아서 교육받을거란 얘기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돌아서 나가는 뒤로 담배연기가 몽실거리며 올라간다. 사내 금연이라는 딱지가 보이지도 않는 지 쉬도 때도 없이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가관이지만, 앞으로 볼 일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그나저나 점심 정도는 먹을 시간을 주겠지? 꼬르륵 거리는 배에서 굶주림을 호소하고 있으니 돌아가서 책상에 쌓여있을 도시락이라도 먹어야지 싶다. 손을 싹싹 비비며 부서 내로 이동하는 가운데 머릿속에서 킨이라는 인물은 이미 지워지고 없다. 다만, 이사장님이 어떤 술을 좋아할지는 좀 고민이 된달까.

 

-

 

비서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다만 언제나 깔끔한 복장을 준수해야하고, 빡빡하게 짜여진 스케줄을 쉴 새 없이 암기해야 한다는 정도? 물론 그런 중책을 맡을만한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실례를 범할 수는 없다며 하루의 반 이상을 교육으로만 소진하고 있는 주제에 할 말은 아니다. 그리고 비서팀이라고는 하지만 실상 팀원들을 마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교육을 맡은 직속 상관을 제외하고는 회식자리를 제외하고 만날 일은 없다. 그리고 보통은 자신이 맡은 임원들의 스케줄에 맞춰 식사와 출퇴근이 결정된다 하는데, 보통 이사장님은 해외 쪽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으시고, 신입비서가 업무를 채 배우지도 않고 이 그룹의 실권자의 수행비서를 맡는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보니 아직까지 이사장의 얼굴짝은 본 적도 없다. 사가루 킨씨도 물론이고.

 

오키타씨.”

, 스즈키씨. 무슨 일이십니까?”

전무님께서 오퍼 들어온거 통으로 째시는 바람에 시간이 나서 회사에 남아있었어요. 아직도 교육받고 계세요?”

사카타 이사장님께서 들어오시는 날 투입 예정이래요. 그 전까지는 이사장님과 관련된 업무와 사가루 전무님과 관련된 업무를 주로 파악하고 있었어요. 두 분이 합작하시는 일이 많아서 둘 다 알아두지 않으면 경을 친다고.”

하긴, 사카타 이사장님을 맡으셨으니 아무리 교육을 해도 불안하실걸요. 워낙 괴짜같으신 분이셔서.”

이사장님에 대해서 좀 아시나봐요?”

안다기 보단 소문이죠.”

 

사카타 긴토키. 직책은 이사장. 성격은 괴랄하기 짝이 없으나, 능력있고 사업 수완도 있고, 금력도 있으며 항간에는 꽤나 잘생긴 사람이라는 소문도 있다. 하지만 비서실에서 하는 들려오는 소문은 이것과는 조금 달랐다. 이사장은 실제로 까다롭고 냉철하기 짝이 없어 말 한마디 잘못했다 하면 그대로 모가지란다. 제 수행비서를 맡을 사람들은 보통 사가루 킨의 추천으로 받는 편인데, 완벽한 일처리를 자랑하는 킨과 대비하여 수행비서의 일처리가 조금이라도 흠이 있다면 그것도 모가지란다. 일을 할 때 조금의 소음이라도 용납하지 않고, 사가루 킨을 제외하고 그가 존재하는 반경 내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고 한다. 현재 비서실장도 전 이사장님의 수행비서로 발탁되었다가 이사장이 평상시 사용하는 만년필이 아닌 다른 펜을 그에게 건넸다고 해서 잘릴 뻔 한걸 사가루전무가 말리며 비서실장의 자리에 앉혀줬다고.

 

잠깐, 그러면 제가 온 것도 사가루 전무님의 추천에 의한거겠네요?”

아마도 그럴거에요. , 제가 한 말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사카타 이사장님이 까다로운 편이긴 하지만 사가루 전무님이 어지간하면 다 구제해주시거든요.”

 

항상 느긋한 표정으로 매양 해맑게 웃는 얼굴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 남자인 내가 봐도 잘생긴 사람. 그리고 위압적인 기세가 누구라도 제 발 밑에 두고 군림할 것 같이 생긴 사람. 우스운 생각이지만 어쩌면 이사장도 그 느긋하면서도 위압적인 분위기에 눌려 사가루 전무의 말을 따르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그러는거 아니야? 아니면 사가루전무를 좋아한다던가. 그래서 사가루 전무 밑에 깔린다던가. 진짜 그런 작자면 볼만 할 것 같은데? 근데 왜 사가루를 지 비서로 안 쓰고 매번 수행비서를 뽑아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한대? 무슨 심보야……. 킨에게 잡혀 사니까 지한테 낮추는 사람들을 괴롭히겠다는 건가? 무슨 그런 사디스트적인 사람이 다 있어?

 

이런 저런 의미없는 말 들을 늘어놓다가 이만 가봐야 겠다는 스즈키씨를 배웅해주고 다시 교육에 들어가겠다는 실장의 뒤를 따라 업무 스케줄을 외우고, 다양한 능력의 시험을 받았다. 운전이라던가 위급상황에서의 대처능력, 그리고 보안팀의 대표번호와 보안실장의 개인번호까지도. 그 외 임원들의 대표번호등등. 머리가 터지도록 외우는 신세가 땡땡이치던 전과 완전히 뒤바뀐 모습이라 스스로의 모습을 처량하다 생각할 뿐이었다. 제 앞에서 온통 걱정과 고민만 쏟아내는 실장의 얼굴에 타바스코라도 한 방 먹여주면 이 불편한 마음이 풀릴 것 같은데. 히지카타라면 난잡하게 싸웠겠지만 이 깍쟁이 같은 실장은 대놓고 제명을 외칠 것 같아 그러지도 못한단 말이지. 한참을 지루하게 온통 숫자들로 가득 채워진 번호판을 보고 있을 무렵 실장의 핸드폰에 작은 진동음이 들려왔다. 다양한 자료들을 분류해가며 이쪽에게 설명하고 있던 실장의 얼굴이 그대로 창백하게 변하며 저를 이 자리에 두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딱 한마디와 함께.

 

여권 준비하세요. 이사장님 오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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