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무이 x 긴코 



아마도 영원히

(2 편)


강하게 내리친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한 참동안이나 깨어나지 못했다. 본신이 남자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만큼 완벽하게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 그 덕에 상처하나 없이 완벽한 모습으로 하루사메의 배에 탔으니 당신을 여인으로 만들어준 작자들에게 고마워해야할 거야. 


" 긴토키. "


입에 익지 않은 이름이 흘러나오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 적갈색의 눈동자가 띄여졌을 때 어떤 빛을 내게 보여줄 지도 꽤나 기대되었다. 적개심이 가득한 눈동자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체념한 자의 눈동자일까. 만약 두 번째의 흐트러진 모습을 내게 보여준다면 그대로 목을 따 지구로 배송해 줄 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당신이 굉장히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멀쩡히 살아나 다시 검을 마주했으면 좋을텐데~.


" 제독. 그 자는 어떻게 할 참이지? "

" 글쎄... "


순간 그 눈 빛, 뇌세적으로 깔리던 눈 빛에 저도 모르는 새에 들끓고 있던 정복욕이 들끓었을 뿐이었다. 여자라는 생명체를 딱히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 것도, 정욕에 휘둘리는 쪽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강자, 여자라는 껍질을 뒤집어 쓴 채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자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달랐음이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났거든. 어둠을 틈타 날 뛰는 존재를 그 누구보다도 진중한 눈으로 그저 약하기 짝이 없는 목검 하나에 의지해 어둠을 가르며 동작을 보이는 모습이. 거기에 휘두르는 목검과 주먹이 맞닿는 순간에 손 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몰려오는 간질거리는 느낌은 생전 처음 느껴봤달까. 이 붉게 물든 세상에서 그저 서있는 것만으로도 그가 뿜어내는 단내에 혈향이 가시는 것만 같아.


" 아이, 아이를 낳게 해야지. 그녀라면 충분히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이를 낳아주지 않겠어? "

" 그게 전부라면 그 자리에서 처리해도 되었을 텐데? "

" 아부토, 내 일에 언제부터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고. 응? "


결국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며 돌아서는 아부토를 뒤로 하고 앞에 보이는 은 발을 눈에 담았다. 그 자리에서 처리해도 되었을텐데 난 어째서 당신을 이 배 안으로 들인 거지? 당신, 진선조랑도 인연이 꽤나 깊지 않았던가. 신스케와도. 묵직한 긴장감이 돌며 뭔가 가슴께에 걸리기라도 하는 양 답답함이 들어찼다. 손가락이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부드러운 피부의 촉감이 한결 더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어왔다. 더 없이 이질적인 두 가지의 생각이 머리를 채우며 혼란한 마음이 가중된다. 야토만큼이나 하이얀 피부를 그와 어울리는 핏빛으로 적시고 싶다는 생각과, 강한 힘을 뿜어내는 근육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상처입지 않고 당당한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생각.


" 꽤 힘들게 하네. 생각을 이렇게 복잡하게 한 존재는 없었는데 말이야. 여차하면 머리를 터트려버려도 될 텐데 또 그러기는 싫단 말이지... 요새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있어. 백야차. 그러니까 강제로 범하기 전에 일어나라고. "


인육을 좋아하는 것도 즐기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그 살결은 부드러울 것 같아 먹고 싶으니까. 


-


" 으윽... "


눈이 뜨여 확보되는 시야가 흐릿하기 그지 없다.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난 마냥 몸이 욱신거리고 뒷 목이 뻐근하다. 늙어간다는 건가... 확실히 조금 더 젊었을 때는 아무리 칼질을 해도 몸이 그렇게 까지 아프진 않았는데 요새는 하도 자주 맞다보니 맷집만 늘어나는 기분이다. 왠지 모를 이질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것 같지만, 아직 안경이 자신을 깨우지 않았기에 느껴지는 것이리라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감으려 하니 왠지 모르게 익숙한 주황색 머리통이 눈에 들어온다.


" 어이 카구라. 긴상이 몸은 여자지만 마음만은 늙어가는 아저씨라고? 그러니까 좀 떨어지지 그래. 아앙? "


눈을 감으며 웅얼거려봤자 들리지도 않는 다는 양 배에 기대있는 머리통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귀찮아질 것 같다는 예감에 더 이상 귀찮음이 몰려온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친듯한 기분이 들지만 아무렴 어쩌겠냐는 생각이 앞선다. 그대로 다시 숙면에 취할 생각으로 눈을 감는데 이질적인 음성이 귀에 꽂히듯이 들려온다. 신파치도 카구라도 아닌 타인의 음성. 머리 속을 굴리며 열심히 그 음성의 주인을 떠올려 보지만 그 누구도 일치하는 자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그 익숙한 주황색 머리와 이질적인 음성이라면 단 한 명 떠오르는 자가 있지만 과연 그 자가 날 찾아올 확률이 얼마나 높겠냐는 것이다. 


" ...잠깐. 내가 분명히 그 때 나갔던 이유가... "

" 긴토키. "

" 잠시만, 긴상 생각할게 좀 있어서. "

" 한 번만 더 부르게 한다면 그대로 박아넣을 예정인데 어떻게 생각해? "


이질적인 음성뿐만 아니라 차분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흘려보내는 내용 자체도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자 마자 마주치는 새파란 벽안. 카구라와 같은 눈 같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나 그 눈에 담긴 아수라를 누가 감히 포용하고 마주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눈에 우주를 담는다면 그는 눈에 아수라, 패왕의 별을 담고 태어나 우주마저 정복해버릴 듯한 광기를 지닌다. 그 눈과 마주하자 마자 돋아오는 소름에,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이 익히 알던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온 몸에 긴장이 찬찬히 흐른다. 


다행인 건 몸에 큰 상처가 없다는 것이고 둘 째로 동야호가 근거리에 위치해있다는 것. 세번째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 카무이, 그가 있으니 이 곳이 하루사메의 배 내부일 것이다. 빠져나갈 구멍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으나 위치라도 파악한게 어디냐는 생각. 


" 어이 어이 긴상은 몸은 이래도 늙다리 아저씨에 불과하다고? 박는다니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는게 아니야. "

" 본래 강한 자가 여인이 되었으니 이 때 취하여 아이를 낳게 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강한 아이가 태어날 게 분명하니까. "

" 그 쪽 긴상의 말을 듣고 있긴 한거야? "

" 당신을 살려서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사실로도 눈치 채지 못하는 거라면 실망인데. "


빙긋이 입가를 올려붙여 웃는 미소가 소름이 돋을 만큼 섬뜩하게 느껴져 왔다. 남자. 아무리 외관이 여자라 해도 자신이 느끼고 있는 본질은 남자다. 여자라고 해도 싫을 마당에 남자의 모습을 한 상태에서 그의 말에 순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 끝을 까딱이자 단단한 나뭇결이 만져졌다. 이 곳은 하루사메의 선내. 카무이를 밀쳐놓고 달려 나가기엔 이 몸으로써 체력이 딸린다. 더구나 천인과 야토가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그런 행위는 수명의 단축만을 가져올 것을 익히 알고 있다.


" 긴상은 연약하다고, 야토를 받아들이다간 부서지고 말거야. 그러니까. 강한 야토께서 이해하라고. "


가만히 앉아서 당해주는 건 별로 취향이 아니다. 둥근 눈 웃음을 짓던 눈에 탐욕이 스미고 그 눈빛을 마주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자신의 몸이 발 끝부터 잘근거리며 씹히는 기분이 들었다. 다리 근육이 경직되고, 그의 주먹을 받아낸 동야호가 부러질 듯 팔을 압박해왔다. 눈으로 범한다는 말의 뜻을 같은 남자에게서 느낄 줄이야. 


" 왜 인간들은 항상 벌주를 택하는 지 아직도 모르겠어. 그렇게 나를 모를까. "


한 번의 호흡에 가까이 다가온 그의 손이 검과 엇갈리 듯이 파고 들어와 검 날을 겨드랑이로 잡아 코등이를 내리쳤다. 인간의 힘보다 억센 야토의 힘에 검을 잡고 있던 손가락으로 부서질 듯한 격통을 맛봐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검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검을 그 옆구리 사이에서 빼내려 힘을 주자 너무나도 수월하게 빠지는 바람에 그대로 균형을 잃고 뒤로 주춤일 수 밖에 없었다. 단 한 번의 호흡으로 상대의 호흡을 빼앗는 건 역시 괴물이나 가능한 거 아니야? 


" 이봐. 지킬게 많은 수호자라면. "


'멈칫'


" 날 받아들이는게 맞지 않겠어? 내가 죽인다는 것도 아니고, 그 쪽이 지구로 돌아간다 해서 내가 못 찾아내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 쪽은 지킬게 많지 않았던가? "

" 아니 긴 상은 남자고, 호기심이라면 긴 상은 몸을 사리고 싶은데... "

" 모두 죽어도 좋다는 건가봐? "


웃고 있으나 단호한 눈동자는 전쟁중에서 동료에게서 자주 봐왔던 눈동자와 다름이 없다. 스스로의 결심이 세워진 사무라이에게서 보이는 뜻을 바꾸지 않겠다는 강단 있는 눈동자. 그게 어째서 하루사메 제독에게서 보이는 지는 몰라도. 자신의 한 마디에 지구에 있는 이들의 운명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만큼 단정적이고 추호의 여지도 두지 않겠다는 태도가 그대로 보여지고 있으니까. 


" 내가 그 쪽을 받아들이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어? "

" 흐응, 모르지. 형씨가 도망간다면 숨을 수 있는 곳을 없애는 수 밖에~. 난 그렇게 너그러운 존재가 아니니까~. "


손에 힘이 빠지고 언제나 적을 먼저 내리쳤던 검의 끝은 스스로 굴복을 뜻하듯 바닥을 향해 떨궈졌다. 죽일 수 없다. 상대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강자다. 무엇보다도 체력이 안된다. 그를 죽일 수 없을 뿐더러 도망도 못 간다라. 남자의 몸도 아닌 여자의 몸으로 도망가야 하는 끔찍한 상황속에서 답은 이미 나와있는 지도 몰랐다. 그저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뿐. 무엇보다도 그가 여색에 힘을 쏟는다는 사실을 애초부터 믿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하루사메의 제독이 사사로운 여자 하나로 장난치기 위해 배를 움직이고 본인이 움직일 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긴 어렵지만.


" 걱정하지마. 난 그 쪽이 지켜야할 대상도 아니고, 그 쪽의 진심을 바라는 쪽도 아니니까. 그 쪽 말대로 내 흥미가 떨어지고 그 쪽이 남자로 돌아간다면 지구로 다시 데려다 줄 수도 있는거고. "

" 하, 카쿠라와 남매라면서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구만, 그 녀석은 귀엽기라도 하지. "

" 긴토키. 싸울 때만 승부욕을 불태우지 말고 침대 위에서도 한 번 불태워보지 그래? 응? 긴코. "

" 뭐뭐뭣... 긴코라니 소름돋잖아. 그리고 아아아직 난 여기가 익숙하지 않으니까 침대는 아직 그렇고 응? "

" 오래 기대하고 기다렸단 말이야. 인간은 왜 그렇게 나약한거야. 조금 더 늦게 일어났으면 그대로 박아넣었을꺼야. 나름대로 배려해준거란 말이지~ "


살려줘. 붉은 색의 머리가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그의 손이 먼저 다가와 눈을 덮어왔다. 


" 그렇다고 환자를 데리고 내 욕구를 표출할 생각은 없어. 그러다가 죽어버리면 안되니까. 오늘은 그냥 자. 대신 다음에도 칼부림을 시도한다면 지구를 난도질 쳐주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


그의 목소리가 웅웅이며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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