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무이 x 긴코 



아마도 영원히

(3 편)


누군가를 배려해본 적이 있느냐 묻는다면, 무릎이 강제로 꿇려진 적은 있어도 상대를 위한 적은 없다 말할 수 있었다. 약하고 나약한 자는 척결해야하는 대상이었으며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공기를 축내는 존재에 불과했으니까. 지금도 그 생각에 별다른 변화는 없다. 다만 하나의 예외가 생겼을 뿐이다. 모든 상황에 예외가 되는 자신에게 있어 그 존재가 유의미한 하나의 약자. 분명 그 가느다란 목줄기가 한 번의 손짓에 꺾일 것이라 예상되리만큼 연약하기 짝이 없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 약자에 불과하지만 선내의 다른 이들에게 있어선 투기를 끓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강자이기도 하다. 강한 자는 마땅히 배려받아야 옳은 것. 그렇게 자위하며 그녀를 먼저 잠들게 한 스스로를 이해시킬 뿐이었다.


" 아부토.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봐? "

" 그를 다시 지구에 돌려놓는게 가장 옳은 것 같은데, 그에게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여기엔 꽤 많다고. "

" 그렇다고 해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자가 나를 빼고 존재하던가? "

" 제독. 사적인 감정이 얼마나 개입되어있는거야? "

" 내가 여색을 밝힌다던가 정복욕에 들끓어오른다는 일이 말이 되기나 할까. "

" 말도 안돼. "


그러니까.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택도 없는 배려나 하고 앉아있는 거 아니야. 이런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아. 나에게 마음이 없는 인간따위를 잡고 쩔쩔매는 내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그저 강자라는 이유 하나로 스스로를 정당화하기엔 내 스스로가 이상하다는 걸 가장 잘 아는 자가 나란 말이야.


" 그럼 빨리 안아버려. 결국 우리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인간이야. 양이전쟁에서 활약했던 무사라고. 진선조와 어울려다니고, 양이지사와 같이 다니는 꼬라지를 보면 모르겠어? "

" 그래서 더... 가지고 싶은걸~. "


문 틈으로 보이는 하얀색 유카타가 눈에 들어온다. 그 유카타 속에는 하얀 살결이 부드러운 촉감을 자랑하며 쌓여있다. 강인한 남자의 근육으로 뒤덮혀있던 팔은 여자가 되어서도 근육이 알차게 배어 야토 족의 피부만큼이나 탄탄하면서도 말랑거린다. 그녀를 안아올렸을 때의 그 묘한 촉감에 홀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야했던가. 바로 눕혀 다리를 벌리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서고 싶은 마음을 참고 참았던 것은 우습게도 그녀가 깨어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이유 단 하나였다. 


" 흐응, 안아보면 뭔가 좀 생각이 달라지겠지. 아부토. 기선상태는 유지하고 일처리는 알아서~. "

" 어이, 매일같이 부하는 고생시키는 주제에 혼자서 놀겠다는 심보야? "

" 그게 아부토의 일이고 내가 아부토를 살려두는 이유니까? "


황당하기 그지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부토에게 상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작게 열려있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서 제 침상에 누워있는 긴토키, 긴코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긴토키. 긴코라 장난삼아 불러댔음에도 긴토키라는 이름에 더 정감이 간다. 그 쪽과 마주하며 그 은발을 피로 적시고자 했는데, 심장을 적시게 생겼다고. 그 쪽을 생각하며 틔워올린 승부욕은 이상한 쪽으로 전개를 바꿔가지 않았느냐고. 투덜거리면서도 곤한 숨소리를 내뱉는 그 규칙적인 호흡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단순히 옷자락을 건드리며 장난을 칠 뿐 그를 깨우지는 않았다. 다만 관찰할 뿐이었다.


투명하기 짝이 없는 야토의 피부에 비해 흰기가 많아 창백해보이는 얼굴을 바라보니 단아하게 자리한 곡선이 눈에 들어온다. 요시와라에도 미녀들이 가득하지만 그 가운데에 데려다놓아도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도발적인 눈매에 하늘을 가득히 끼얹은 듯한 은발. 도톰한 입술로 흘려대는 아저씨같은 말투는 꽤나 농염할지도 모른다. 수동적이고 유순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도 사내의 말에 깊히 공감해주고 동조해줄 것이다. 알아본 바로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 하지만 그렇다고 요시와라에서 술이나 따르며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이나 파는 엉덩이가 가벼운 여자도 아니지. "


그렇게 되도록 놔둘리도 없고. 아부토는 대충 그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물론 도망가려 든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할 지 장담은 못해. 하지만 그렇게 순하게 잠들어있기만 한다면, 내 뜻대로만 따라준다면 그 쪽을 그렇게 험하게 대할 생각은 없어. 가끔 내 대련상대나 해준다면 다른 놈들이 함부로 기어오를 일도 없을테고. 어차피 내 주먹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부토를 제외하고 그 쪽 뿐일테니까. 


-


일어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붉은 머리카락이 있다. 그 누구보다도 확연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붉은색 머리카락. 그 아래 놓인 얼굴은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아이의 얼굴이 배어있어 친근한 느낌을 준다. 그 얼굴에 미소를 작하지 않게 피어올릴 때마다 다정한 느낌을 받는 것도 순진무구한 벽안에서 기인하는게 많겠지. 그렇기에 누군가를 죽이며 지어내는 미소가 서럽도록 아름답되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나름대로의 배려라고는 하지만, 글쎄 죽는 사람에게 내리는 배려가 진정 배려일리가 없다.


" 내가 어쩌다 이런 꼬맹이한테 걸려서... "

" 그런 말은 내 가학심을 불러 일으킬 뿐인데. 굳이 날 자극하려 들지 않는게 좋을거야. "


미소에 살기가 느껴진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언제부터 잡고 있었는 지는 몰라도 뜨끈해진 손 위로 단단하기 짝이 없는 무인의 손이 느껴져 온다. 맑은 피부가 이리도 단단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수 많은 살겁과 전쟁의 결과겠지. 그렇게 비정한 사람이, 해적이라는 비정한 사람이 무엇때문에 자신에 대해 안절부절 못하는 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단순히 그가 말한 대로 강한 아이를 낳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인걸까. 상대의 진위를 알 수 없을 때 인간은 혼란에 휩싸여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기를 두려워한다. 한 발자국 내딛는 길에 나락이 있을 지 천상이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 몸 관리나 잘해. 오늘 이후로 걸음마를 다시 연습해야할 수도 있으니까. "

" 뭐뭣!! 그그그그게 무슨 소리야. "

" 애교부려도 소용 없어. 몸이 다 나으면 예뻐해준다고 약속하지 않았었나? "

" 그그그랬었나? 아아아직 긴상 몸이 다 나은게 아니라서.... "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무슨 생각으로 저리 말하는 건지 알 수도 없다. 금욕적이기 짝이 없는 얼굴로 뱉어대는 외설적인 말들은 얼굴과 표현간의 간극을 일으킨다. 그래서 더 두려움에 벌벌 떠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저 아래 깔려 벌벌 떨어댈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끔찍하기 짝이 없다. 분명 저 눈에 자신이 여자로 보일 것임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수용되지 않는 거북함이 내면에 남아있다. 


" 걱정하지마.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에 와서 그 쪽을 건드릴 사람도 없고, 내가 그 쪽에게 발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만큼 그 쪽이 중요하고... "

" 윽... 발정이라니 그런 얼굴로 내뱉는 단어가 아니란 말이지... "

" 그 쪽은 언제나 예외란 말이야. 이런 감정이 소중하다는 건가. "


스스로 답을 찾아내려는 듯 갸우뚱거리던 고개가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가까워져 온다. 소중하다는 한 마디에 꽂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달아오르는 볼에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그리고 벽안, 꽤나 순진해보이지만, 본성이 드러날 때면 끔찍할정도로 살기를 흘리며 눈웃음이나 흘려대는 눈이 바로 앞에 다가와있는 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그 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입술에 말캉한 감촉이 전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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