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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검을 빼들었다. 가져왔던 검은색 제복을 어깨에 걸쳤고, 마지막 남은 한 통의 마요네즈를 품에 넣었다. 그리고 그가 맡았던 집안일이라는 임무를 충실하게 따르며 난장판이 된 집안을 정리하고 아마도 주인을 따라간 듯한 사다하루를 위해 개 사료를 담뿍 담았다. 습격이 있기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검격의 상흔이 기둥에 남았다는 점과 약간의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중간 중간에 존재한다는 점. 그 외에는 금방이라도 사람이 튀어나와 사람의 혼을 빼놓는 화법으로 말을 걸 것만 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남자는 그 모습에 만족스러워하며 밖으로 나섰다. 다시 돌아 올 사람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해뒀으니 사람만 돌아오면 된다. 곧 병원에서 퇴원할 남자를 반겨줄 이들이 필요하다.
남자는 가장 먼저 시무라 오타에의 집에 찾아갔다. 신파치의 소식을 전하자마자 언월도를 꺼내들며 투지를 불태웠지만 병원에 빈사상태로 긴토키가 누워있다는 말을 듣고는 해결사로 향했다. 집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하는게 아니겠냐며 웃는 그를 뒤로 하고 야규 큐베와 곤도 이사오가 남자의 뒤를 따랐다. 둘 다 정복 차림은 아니었다. 언제까지나 친구의 입장인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그들의 나쁜 친구들을 지켜야 하니까. 또 언제나 힘겹게 웃고 있는 여자를 위해서, 더 눈물을 흘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두 남녀는 꽤 오랜만에 손을 잡았다. 아니, 잡았다가 곤도 이사오쪽은 한 번 패대기를 당하고 당당하게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다가 남자한테 한 소리 들었다.
카구라쪽에는 따로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어 우미보즈쪽에 간단한 정황이 적힌 쪽지를 남긴 이후에 남자는 긴토키가 행동했던 반경을 추리해보며 그의 다음 행로에 주목했다. 그의 행적을 확실히 알기 위한 방책으로 진선조에 들렸을 때 남자를 맞이한 건 소고였다. 평소처럼 안대를 매고 막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 아니었다. 날카로워진 신경을 그대로 내보이며 싸늘한 눈동자를 굴린 소고는 남자의 빈자리는 자신이 채우고 있을 테니 부디 빠르게 모가지를 따오라는 말을 전했다. 넘겨준 서류에는 소고와 진선조 대원들의 필체로 적힌 남자의 이동반경이 적혀 있었다. 끝없이 악연이 회오리치지만 얼굴을 맞대고 몸을 맞대며 뜻을 같이하는 자를 더 이상 적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동료다. 진선조의 이름과 국중법도의 지침을 따르진 않지만.
“토시. 에도를 지키는게 아니다. 동료를 지키는 것이다. 동료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에도를 맡길 인물은 없어.”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막부에 찍히면 곤도씨 입장이 난감해질까봐 그러는 거지.”
“내 입장을 신경쓴다기엔 너무 무대포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간단하게 고릴라의 말을 무시한 남자는 고릴라와 큐베에게 당면한 문제에 대한 간단한 지침을 일러준 이후에 홀로 움직였다. 앞에서 남자가 시선을 끄는 사이에 두 사람이 뒤에서 한 타를 날릴 것이다. 남자의 생환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표명은 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고릴라는 남자를 죽게 내버려 둘 상이 아니니, 딱히 제 목숨에 걱정을 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외려 묘한 흥분마저 얼굴에 맴돈다. 무슨 흥분인지는 남자도 그 감정에 대해 장담하지는 못했다. 단지 신물이 날 정도로 생명체를 베는 일에 흥분 한 것은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어쩌면 긴토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간 느낌에 벅차오른 것이었을까.
문득 머리 속에 은발머리가 떠올랐다. 붉은 눈동자와 한없이 지루한 표정이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방금 제가 한 가정에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마구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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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얼굴엔 긴박감이 가득했다. 숨 하나 잘못 내쉬었다간 그대로 포위를 당한 채 총알받이가 될 지도 모르니 최대한 신중에 신중을 가할 상황이었다. 그 부분에 있어 멍청한 짓을 자주 저지르고 다니는 두 사람이 떠올랐지만 할 때는 하는 사람들이니 만큼 믿어야 했다. 믿지 않으면 본인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그런 절망적인 미래에 몸을 던지고 싶을 리가 없다. 그러니 믿어야 했다.
남자는 몸을 숨기며 정찰병이 주위를 돌아가는 주기를 들어가기에 앞서 파악했다. 대형 폭력조직, 아니 천인들의 손 발답게 움직임이 기민했다. 천인들도 간간히 모습을 보였고, 지속적으로 거대한 화물트럭이 물자들을 운송하며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신호없이도 잘 짜인 경비는 폭력배라기 보다는 군사조직에 가까웠다. 견회조나 진선조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비밀 군사조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따로 쇼군이 만들어낸 조직일 수도 있으나, 도쿠가와 시게시게는 이런 군 조직을 만들어 낼 위인이 아니었다. 아마도 천인들과 손을 잡은 막부의 간부들이 경비를 들여 만들어낸 조직인 듯 했다.
삼엄한 경비의 순찰 과정을 눈에 담던 남자는 잽싸게 몸을 움직이며 경비들의 동선에 맞춰 그가 목표로 한 존재를 낚아챘다. 모든 이들의 눈이 돌아가는 시점을 노려 납치한 남자는 준비해뒀던 줄로 존재를 묶은 이후 가볍게 그와 닮은 꼴로 위장했다. 가장 그와 체격이 닮은 존재를 야마자키를 통해 파악해 둔 터라 행동이 빨랐다. 그 이후로는 삼엄한 경비 사이로 몸을 놀렸고, 빼앗은 경비카드를 긁고 안으로 몸을 날렸다. 시의적절한 움직임에 별 다른 경계의 빛은 띄지 않았지만 주변의 감시 시선은 꽤나 삼엄했다. 그 덕에 그들이 넉넉한 정을 쌓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 지도 몰랐다. 적어도 남자의 정체를 확신할 만큼 그를 주의 깊게 볼 만한 사람도 없을 테니까.
남자는 처음보는 환경 속에서도 주위를 확인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다른 이들처럼 평범하게 보이는 데에 주력했다. 대신에 귀를 열어둔 채 신파치, 카구라외 사람들이 납치된 행방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어이, 거기. 어디로 가는 거야? 이번에 운송차량 들어오는 쪽은 그 쪽이 아닐텐데?”
찾기도 전에 들통나게 생겼다.
“하..하하. 머리카락이 눈을 찔러서 방향을 잘못 잡았습니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X됐다.
“그러게, 머리를 좀 잘라야겠네. 뭐 방향도 잘못 든 김에 아래층에 내려가서 보고서 좀 가지고 올라와.”
‘어이!!! 이런 말에 속는 거야? 속는 거냐고!!!! 군기가 들었다 했더니 이런 데에선 왜 이렇게 허술한건데!!!’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머리는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하라고. 내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머리가 날라갔을 테니까 조심 좀 하고.”
“신경 써주신 점 감사합니다.”
전혀 긴장하지 않은 척 몸을 돌린 남자는 삼엄한 경계 속에서 꽤 편안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한참 안쪽으로 들어간 남자는 강하게 검을 쥐며 슬슬 코를 자극해오는 피비린내에 미간을 찌뿌리며 살기를 내세웠다. 감각을 끌어 올리자 발자국 소리외에 비명소리와 신음소리가 피비린내에 배어 몸에 젖어 들어왔다. 고문에 의한 신음소리. 피비린내에 섞인 썩은 내. 어쩌면 지금 가는 쪽이 고문실과 관련이 있을 지도 몰랐다. 빈틈없이 찔러 드는 눈길을 무시하고 가장 깊숙한 안쪽으로 들어서자 살벌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두 명의 천인이 그의 행보를 저지했다.
“여기까진 무슨 일이지.”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보고서를 가지러 오게 되었습니다.”
“보고서? 보고서는 담당자가 따로 있다.”
한층 경계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남자는 그럼에도 태연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손에는 식은 땀이 가득 찼으나, 남자의 얼굴에는 그런 기색이 따로 보이지 않았다.
“담당자가 직접 제게 명령을 내린 사안이니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잠깐 대기.”
앞에서 남자의 행보를 막은 천인 두 명은 무언가의 사인을 주고 받고는 무전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는 듯 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눈빛으로 남자 쪽을 보면서도 무전을 통해 전해져 오는 정보로 살벌한 눈빛을 누그러트렸다. 남자는 긴박한 상황이 한차례 지나갔음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가 대기를 하고 있는 동안 육중한 문 앞에 서 있던 천인 중 하나가 안 쪽으로 들어가며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철문이 느릿하게 열렸다. 그 사이로 비릿한 피냄새와 선명한 비명소리가 귀와 코를 자극했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검은 남자의 눈동자가 보다 깊은 빛을 보였다.
“인간외의 다른 종족을 수집하게 되어 유감이라는 말을 전해줬으면 좋겠군. 인간과 야토가 같이 살고 있을 줄은 예상치도 못한 일이라.”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래, 전해드릴 수 있으면 말이야.”
“네?”
“아무리 그래도 암살조를 몇 번이나 보냈는데 아직도 네 신상에 대해 몰랐겠느냐고. 히지카타 토시로. 진선조의 귀신부장이라지?”
남자의 등골을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도 꽤 살벌한 살기, 혹은 악의. 혹은 절망.
순간적으로 마요네즈가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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