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이X긴토키

*유혈주의

*카무이 시점


희생

(단편)





하얀 손가락이 메마른 입술을 훑고 지나갔다. 축축하게 젖은 입에서는 피비린내가 풍기고, 비루한 몸뚱아리에는 선홍의 내장이 보일 정도로 깊게 패인 자국들이 가득했다. 굴복을 모르는 전사는 이 상처를 가지고서도 투쟁을 외칠 것이고, 결사항전을 외치며 아름답게 살아남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살아남을 지도 모른다. 제 목숨을 깎아가면서도 그 어깨에 버겁게 올려진 수많은 자들의 책임과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 팔 다리가 잘려나가면 이빨로 적을 물어뜯어서라도 제 사람을 지키려고 영혼을 불태우며 그 누구보다도 비참한 말로를 맞을 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 자신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이리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대로 두고 갔다간 까마귀 밥이 되거나, 꽤 값어치가 나가는 모가지를 따다가 어느 천인의 수집품으로 전락할 지도 모를 일. 동생을 보살펴준 인간이기도 하고, 멀쩡해졌을 때 검을 한 번 겨뤄보고 싶기도 하니까. 한 쪽 팔을 들어올리며 일으켜 세우려 하니 위협적인 목검의 검로가 목으로 닥쳐왔다.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임에도 살귀가 되어버린 양 휘두르는 검에 살기가 짙다. 하지만 목에 닿아오는 힘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약했다. 사부에게도 덤벼들던 인간을 이토록 약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는 추락하는 비행기의 조종사다. 승객이 모두 안전하게 탈출할 때까지 조종대를 놓지 못하는 조종사. 그리고 모두를 뒤로 한 채 장렬하게 끝을 향해 달려가는 조종사. 


“이봐요. 형씨. 당신이 얘기하던 영혼이 살귀에 잡아 먹힐 만큼 연약하고 여린 것이었다면 여기서 그냥 죽어버리라고. 그런 연약한 영혼으로 누구를 지킨다는 건데. 어이가 없어서.”


이런 연약한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굳이 약자로 제 손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으니 그대로 두고 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부축하는 건, 바보 같은 동생이 아끼는 놈이고,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고, 그 영혼이 불타오를 때 그가 만들어내는 살덩이가 비산하는 광경이 처절하도록 아름다우니까, 그 살육에 대한 관람료일 뿐이다. 목으로 다가오는 목검을 가볍게 던져버리고 더 이상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그의 피로 물든 붉은 유카타로 상처를 감싼 다음 업었다. 피비린내에 그만의 달콤한 내음이 묻어난다.


“단장. 굳이 단장이 업고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흐음. 여기서 가장 체력이 좋은 사람이 부상자를 업는 게 맞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언제부터 내 행동에 토를 달았다고.”

“매번 츳코미를 걸지만 듣지 않는 건 단장이라고.”

“그 입은 내 행동에 대한 해명을 하는데 사용되는 걸로 충분하니까.”

“어련하시겠어요.”


-


“언제나 모두를 구해주고 지켜주던 수호자에서 살인마가 된 기분은 어떻지?”

“예나 지금이나 내가 지키고 있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상관없어.”

“매번 싸우고 죽여봤자 몸만 상하지 별로 득보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걱정마라. 싸우고 싸우다 목이 날라갈지라도 너랑은 한 번 붙어주고 갈 테니까.”


무사는 영혼을 언급했었다. 팔이 날라가고 내장이 갈려도 영혼이 부서지지 않는 다면 언제고 일어나 무기를 잡고 자신의 이상을 위해 달릴 수 있다고. 우스운 말이지. 그 이상이 항상 선할 것이라는 가정도 없는 주제에 입만 산 놈들에게는. 하지만 긴토키는 조금 다른 존재였다. 항상 은발머리를 발견하게 되는 곳에선 자상과 총상으로 몸을 도배한 채 눈만 시퍼렇게 살아있는 전장 속이었다. 천인과의 전쟁, 막부와의 전쟁에서 홀로 고고히 빛나는 이상이라도 되는 양 시퍼렇게 눈을 뜨고 부서지고 사그라들어도 그 눈빛만은 변하지 않았다. 처음 살려왔을 때 살귀에 집어 먹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 아닐 수가 없다. 오늘도 다른 이들의 시체를 밟고 앉아 제 피가 흘러가는 꼴을 보고 있는 모습은 조금은 지쳐 보이면서도 여전히 생기가 흘러 넘쳤다. 


항상 영혼이라 했다. 영혼이 부서지지 않으니 자신은 몇 번이고 일어나 칼을 휘두르던 제 몸뚱아리를 휘두르건 지켜야만 한다고. 지켜야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어봤을 땐 그 무엇보다도 강한 것이라고 답했었다. 펼쳐진 전장, 야토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행복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싸우지 않고 그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그 강함을 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미친듯이 지키려고 하며, 목숨마저 내걸고 그가 투쟁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함이었다. 그를 이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테고 꽤 고생 좀 하겠지만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카타 긴토키, 백야차보다도 강한 것이라면 아마도 내가 다가가야 할 이상이 될 지도 모르니까. 그것이 사부를 몰아낼 수 있었던 힘이었고 저들 만의 힘으로 그들 스스로를 지켰던 힘일 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그의 행보를,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켜보았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오로지 인간들에게만 태양이 허락되듯이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그들의 혼과 이상은 야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을까. 조금 짜증이 날 무렵이었다. 탁하게 핏물이 괸 그의 목소리가 쇳소리와 함께 귀를 긁었다. 


“카구라는 바보 오빠를 지키려고 대들고, 신파치는 자기 분량은 챙겨야 한다면서 전쟁에 뛰어들고, 마다오는 마지막은 한 명의 사무라이로 끝내고 싶다며 나대고, 신센구미는 땟국물이 떨어지는 놈들 주제에 더러운 손으로 검을 휘두르며 무사도를 운운하지. 야토족 꼬맹이는 매번 홀로 그 강한 힘으로 이기려고만 해서 모르는 거다.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사사로운 감정이 사그라 들면서 지키는 검의 강함을 모르는 거라고, 요녀석아.”

“흐음, 그래도 내가 형씨보다는 강한 것 같은데?”

“세상은 한 명이 들고 사는 건 아니니까. 나 하나 이긴다고 해서 내가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서운 거지.”

“그 무서움 좀 보여주면 안되겠어? 매번 형씨가 나가 떨어져서 죽어가는 꼬라지만 보니까 별로 감흥이 안 오는걸.”


나른한 붉은 눈동자가 이 쪽을 흘긋 보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뭔가의 짜증이 울컥 솟아 오르지만 익숙하게 그의 팔을 걸어 올리며 몸을 핏물이 채 빠지지 않은 붉은 유카타로 감아버리고 업었다. 그의 몸에서 초콜릿 향이 풍기지 않는다. 조만간 하나 사서 먹여야 하나 싶었다. 


수많은 흉터. 처음 천인들이 강제로 침입해왔을 적에 싸우면서 생긴 흉터가 흐릿하게 남아있는 상태에서 요 근래의 전쟁으로 붉은 실선들이 가로지르며 새로운 흉터들을 만들어냈다. 붉은 그물망에 걸린 것 같이 하얀 피부와 붉은 색의 대비가 심하다. 피와 내장이 부서져 흐르는 탁한 혈류. 누가 봐도 치명상임이 틀림없는 외상을 입고도 몇 날 몇 일을 다시 싸우고 다시 싸우던 사람이다. 5일을 그렇게 싸웠다. 그의 주변에 시체로 산이 만들어지고 첫 날 죽은 이들의 시체가 부패되며 시독이 흐를 때까지도 내장이 흘러내리는 지, 져며진 살결이 뜯겨나가는 지도 신경 쓰지 않고 홀로 고전하던 모습이 아직도 머리에 선하다. 고통의 신음을 내뱉지 못할 정도로 지치고 지쳐 치료를 한다 해도 죽을게 뻔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장렬히 산화할 줄 알았건만, 치료한 지 이틀 후에 전장에서 다시 피에 떡진 은발머리를 보게 될 줄은 몰랐었다. 그러면서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라면 다시 일어나서 몇 번이고 고군분투하며 다시 싸울 지도 모르겠다고. 


말로만 떠들 줄 아는 놈들이랑 다르게 눈에 보이는 그의 영혼의 크기가 너무 커서, 그 강함이 나를 자극해서 몇 번이고 사선에서 그를 구해왔었다. 핑계는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말 그대로 핑계일 뿐이었다.


-


전장을 참관하는 입장인 자를, 그것도 감히 야토족을 건드릴 수 있는 간 큰 놈들이 있을 줄은 몰랐다.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살욕이 솟구칠만큼 우매한 놈들이고 약한 놈들이었다. 형씨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건방진 놈들은 단칼에 베어버렸던 것 같은데, 힘의 차이도 알지 못하고 덤비는 꼬라지가 버러지 같아서. 주제도 모르고 노는 놈들을 가장 혐오하니까. 매번 그의 행보를 따라갔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날따라 형씨에게서 풍겨오는 초콜릿 향이 유난히 달고 향기로웠던 탓이었는지 화근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내버려두고 지나쳤었다. 뭐 이런저런 핑계를 대봐도 결국 전쟁에서 긴장을 풀고 있었고 뒤에서 기습해오는 것들의 움직임을 찰나간에 놓친 잘못이 컸다. 


아무리 회복이 빠른 야토라고 해도, 아무리 몸뚱아리가 단단한 야토족이라고 해도, 심장이 뚫리고 목이 베이면 죽는다. 살기를 느끼고 몸을 돌린 순간에 이미 심장부근에 시큰한 칼날의 느낌이 느껴졌다. 칼 날은 서늘하지 않았다. 온기가 배어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나를 죽이려 한 사람이라 하기엔 적의나 살기가 없었고 온 몸을 덮을 정도로 따듯한 사람이었다. 태양을 마주할 수 없는 야토족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따듯한 온기. 사람의 체온. 그 중에서도 사람의 피. 미쳐버릴 것 같이 단내가 나는. 사람의 피. 시리도록 아름다운 하얀 머리카락이 출렁인다. 뒤를 돌아봤으니 앞서 가던 그 사람이 보여서는 안되는데, 그 머저리 같은 인간의 하얀 머리카락이 눈에 보인다.


“뭐하는 짓이야.”

“…….”

“눈 떠서 말이라도 해보지 그래?”

“……. 골 아파. 말 걸지마.”

“이봐, 내가 형씨가 지키던 약한 놈들이랑 같다고 생각했던거야, 설마?”

“바보 오빠잖아. 카구라의. 바보. 오빠. 없는 놈들이…. 소중함은 더 잘 안다니까. 가족이잖아.”


그딴 이유로 네 한 몸을 희생할 만큼 네 목숨이 그렇게 가벼운 거야? 

똑 같은 눈을 하고 있잖냐……. 나랑.


세 발의 총성을 울렸다. 버러지 같은 것들의 피를 묻히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글쎄, 그런 생각을 할 여력도 없어 내 몸 위에서 여즉 따듯한 체온을 유지하고 있는 남자가 없었다면 그대로 지구를 터트렸을 것이다. 당장에 칼이 뽑히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으면 언제나 그랬듯이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치명상을 입고도 5일 연속으로 전쟁을 치루던, 약한 놈들이 버둥거리며 찾아대는 영웅이니까. 영웅은 그리 쉽게 죽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백야차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지옥의 불가마에서 삶아지고 있다면 달걀 두 개 던져두고 다시 건져낼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며 그리 달렸던 것 같다. 


사실 기억이 온전히 남아 있지는 않다. 그를 의사에게 맡겨두고, 살리지 못하면 그대로 형씨와 함께 저승길 길동무로 삼아준다 얘기했었다. 그리고 어깨에 칼이 꽂히기 전까지 내 몸에서 피가 하루라도 흐르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항상 따스한 온기를 담은 핏물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갈비뼈를 잡아 뜯고 두개골을 잡아 뜯으면 부들부들한 내장이 훈김을 뱉으며 모락모락 연기를 뿜었다. 뼈가 어긋나고 살이 찢어질 때의 쾌감과 칼을 맞대며 그의 피를 맛볼 때의 쾌감에 휩싸였었다. 그 따듯함과 쾌감에 거지 같은 기분이 조금이라도 가시는 것 같아 그렇게 피에 취해 살았었던 것 같다. 어깨에서 극심한 통증이…. 아니 지워지지 않는 사무치는 허무함이, 그 고통이 잠시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타고 반쯤 나가있는 정신을 현실로 불러올 때까지는 그랬다. 


“아수라를 품은 놈이 꼬라지가 병신이 따로 없네.”

“그 때 미처 내지 못한 승부를 내려고 온건가? 오키타 소고.”

“네놈 따위 그냥 죽어버리세요. 히지카타도 병신이지만, 천인주제에 쩔쩔매는 꼴이 히지카타보다 더하네요. 죽어 카무이.”

“살인마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닌데.”

“형씨가 살릴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라면. 네가 그런 존재라면 적어도 형씨가 목숨걸고 지켜준 보답을 하란 겁니다. 이런 것까지 일일이 말해줘야 알아 듣나. 알 떼라. 요녀석아.”


왜? 내가 살려달라 한 것도 아니고 지켜달라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리고 내가 뭘 해야 하는데. 무슨 보답을 해야 하는 건데.

그걸 나한테 물어봤자 대답해 줄 것 같습니까? 괴로워하는 모습 평생 못 볼지도 모르는데, 이 참에 많이 봐둘 예정이라 안 알려줄 겁니다. 그리고 오늘이 고비라는데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시체랑 섹스 인 더 비치 할 시간에 찾아가 보시죠. 


-


전쟁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죽을 지 모를 일이고, 폭탄이 터지고 포가 쏘아지면 바로 옆에서도 사람이 죽어나갈 수 있는 시기다. 그런 시기에 한 사람이 죽었다고 신파극을 찍어대는 건 감정소비나 다를 바가 없다. 죽으면 죽은 대로 후에 신파극을 찍는 한이 있더라고 전쟁 중에는 애도를 하는 것 조차 감정소비에 불과하다. 감정소비는 체력의 소모가 크기 때문에 적어도 생존하고 싶은 자들은 주변인들의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야토족이라고 다른 건 아니다. 오히려 부모 죽이기라는 풍습이 있을 정도로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종족이 용병부족 야토족이다. 


전쟁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침상에 누워 생명력이 꺼져가는 남자도 나와는 상관없는 자다. 한 번쯤 붙어보고 싶은 강자이기는 했지만 매번 몸이 칼집이라도 되는 양 칼을 꽂고 돌아댕기는 양반이라 멀쩡한 적을 본 적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반쯤 그와 대결하는 일을 미뤄둔 상태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약하디 약한 인간. 그럼에도 사부를 쓰러트린 인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간. 계속 따라다니게 되는 인간. 태양이 아닌 달이 더 잘 어울리는 인간. 나약한 주제에 어깨에 수 없이 많은 짐을 올리고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을 올려두고도 일어서고 투쟁하는 인간. 그 영혼이, 은빛으로 물든 영혼이 시리도록 아름답고 눈이 부신 인간. 


그리고 나약한 주제에 제 몸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제 삶은 다른 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던 인간. 자해에 가까울 정도로 본인을 몰아붙여 어깨에 올린 수 많은 이들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던 인간. 본인은 흙탕물을 뒹굴고, 구정물을 뒤집어 써도 타인은 비단길만 걷길 바라는 인간. 우습지만, 그래서 무시할 수 없고, 자꾸 눈이 가던 인간. 그리고 다시는 바랄 수 없는 미친 듯이 따듯한 온기를, 기분 좋은 온기를 가진 인간.


모두가 모여있다. 눈물을 흘리고 그에 대한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 그저 꺼지지 않는 열기를 눈에 담은 채 남자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남자의 눈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은색의 빛무리가 그들 모두를 감싸고도 번져 나왔다. 너무 눈이 부셔서 감히 눈에 담을 수도 없을 만큼 숭고하되 처절한 빛이다. 몸에 한군데씩은 핏물이 흘러나오는 몸을 하고서도 그들을 웃고 있었다. 아수라다. 그들의 눈에 담긴 것은 모두 아수라다. 아수라의 창이 적의 심장에 박히기 전까지 그들의 영혼은 꺼지지 않고 끝없이 타오를 것이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전력을 가진 이들과 그들을 마주하고 있으나 그들을 피하지 않았다. 희생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바보오빠를 보는 게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해. 하지만 긴토키가 여태 지켜왔던 것이고, 그 영혼이 꺾이면 나까지 꺾여 버릴테니까 난 싸울거다.”

“오랫동안 요로즈야에서 노느라 잊었나 본데, 이래봬도 너 불법 체류중인 천인이지 않아? 동생.”

“바보 오빠.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해. 싸우고 싶어하고 있잖아.”

‘똑 같은 눈을 하고 있잖냐. 너.’


창백한 얼굴이 언제든지 일어나 이쪽을 향해 검을 휘두를 것만 같았다. 그의 붉은 눈이 빛나며 이쪽을 향해 검을 휘두를 때의 오싹함이 그대로 느껴질만 같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느끼지 못할 감각이다. 그런 긴장감도 흥분도. 그 쾌감을 가져간 이들에 대한 복수는 해야겠다고 다짐했을 뿐이다. 약한 놈들처럼 빌빌거리며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는게 아니다. 단지 짜증을 표출할 뿐인 것이다. 나는. 그를 잃음으로써 내가 그리던 긴장감과 살육의 쾌감을 얻지 못하게 만든 놈들에 대한 짜증. 그 짜증을 표출하기 위해 우산을 잡은 것일 뿐이다. 그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은혜를 모른다고 해도 한 번 구함을 받았는데 마땅히 그 보답은 해줘야지. 아니면 진짜로 알이 떨어져 나갈 지도 모르니까. 


핑계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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