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토키X소고



혼란

(完)


적막한 병실에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복도를 울리며 들려온 발소리는 ' 사카타 긴토키 ' 라 적힌 문패 앞에서 멈춰서 느린 동작으로 병실 문을 열어젖힌다. 병실문을 열자마자 맡아져 오는 소독약 냄새에 발소리의 주인은 얼굴을 찌뿌린다. 언제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냄새라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던 그는 위에 걸친 검은색 윗도리를 병실 의자에 걸고 금방 떠난 사람의 온기가 담긴 의자에 자리한다. 항상 이 자리를 지키는 여자를 그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자리를 비켜준 것도 알고 있다. 포기는 빠르지만 책임감은 강한 여자니까.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지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리에 앉은 남자는 침대에 누운 은발머리, 사카타 긴토키를 가만히 바라본다. 언제 바라봐도 아픈 사람이다. 가습기를 틀어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메마른 입술과 핏기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이 그가 겪은 고통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보는 사람마저 아리게 만든다. 푸석푸석해진 얼굴과 전체적으로 야윈듯한 모습은 차마 정면으로 직면할 수 없는 참사나 마찬가지다. 단지 평온하게 잠든 얼굴이지만, 오랫동안 감겨있어 빛을 보지 못한 눈은 굳게 닫혀 다시는 열리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긴토키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은 건조하고 냉막하다. 어쩌면 지쳐버린 눈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오랜 기다림에 지쳐 황폐해진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양. 젖살은 빠지고 성숙해진 붉은 눈이 마주하는 긴토키라는 남자는 2년전에 시간이 멈춰버렸다. 사경을 헤매며 의식조차 찾지 못한 상황에서 몇 번이고 대수술을 겪어내고 수술로 인한 흉터가 몸에 새겨질 때도 그의 시간만은 멈춰있었다. 남자가 원했던 것은 그가 언제나 건강한 모습으로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해결사라는 위치에 서있는 것일 뿐이었는데, 그의 시간은 통째로 멈춰버렸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거대한 상처를 만들어내며, 목검 하나에 의지해 사람들은, 무사도를 지켜내던 긴토키라는 거목이 쓰러졌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2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렇게 사카타 긴토키는 멈춰있었다. 지금도 멈춰있다. 사람들의 마음에 어둠을 드리운채로. 줄곧 멈춰있다. 


" 형씨. 벌서 2년째 누워있는거 알아요? "


처음으로 남자가 말문을 텄다. 건조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감정을 잃은 자의 것. 희미하게 담긴 원망과 그리움도 긴토키라는 남자가 아니었으면 담기지 않았을 정도로 건조하기 짝이 없다. 거칠게 끊어지는 목소리는 격정을 담았다. 이 순간 그를 향해 흐르는 비애가 격랑이 되어 주위를 잠식한다. 단 하루의 객기가 그를 이 지경으로 몰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고 몸을 던져 모두를 구하려는 그의 본연의 모습을 알기에 그 누구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함부로 원망할 수는 없었다. 


" 다들 기다리는데 언제 오려나. 언제봐도 참 나쁜 사람이라니까. 유리검이라고 했잖아요. 이런 고통, 한 번이면 족하다니까요. "


검을 쥐던 남자의 기다란 손가락이 창백한 피부를 훑고 메말라 갈라진 입술을 훑었다. 손 끝에서 전해지는 촉감이 처연해서 무심함을 가장한 가면이 깨져나가며 눈물이 흘렀다. 끓어오르는 슬픔을 토해낼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당신뿐인데, 당신이 일어나질 않는다. 소리없는 울음이 상처입은 한 남자의 슬픔이 레퀴엠마냥 공간을 짓이기고 퍼져나간다. 


긴토키의 손을 부여잡은채 고개를 떨군 남자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2년간 있었던 일을 고해성사하듯 갈라진 목소리로 풀어놓는다. 실타래가 풀리듯 흘러나오는 그의 이야기는 오로지 단 한사람만을 위한 애가. 온기가 남아있는 손이 그를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2년 전 그 시간에 덩그러니 남겨진 한 소년의 고백.


형씨. 오랜만이에요. 2년 동안 이 꼬라지 안보려고 미친듯이 신센구미에 전념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왔어요. 딱 2년만이네요. 형씨가 그렇게 된지도. 내가 내 마음을 밝히지 못한지도. 딱 2년이에요. 누님이 죽었을 때, 그 때도 이렇게 벽에 대고 얘기하는 기분인데, 이야기가 끝나면 잘 왔다고 일어나서 그 때처럼 웃어주시는 겁니다. 

형씨가 그렇게 되고 해결사는 뭐, 유명무실해졌어요. 안경은 직장을 새로 구했는데, 멍청하고 어리버리한 것 치고는 일을 잘해서, 형수님이 금방 도장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는 걸 들었어요. 트집잡는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했었잖아요. 그래서 감식관쪽에 관리로 들어갔는데, 천인들 면상보는 거 제외하고는 할만 하대요. 차이나는 바다돌이와 함께 잠시 지구를 떠났어요. 형씨가 없는 동안 형씨를 대신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면서 우주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나름대로 유명세를 타서 저번에 지구에 왔을 때 형씨한테 최고의 의사라며 별의 별 꼴같잖은 놈들을 붙여놓고 갔는데 형씨가 끝내 못 일어나니까 울다가 지쳐 쓰러지기까지 했다니까요. 하여간 민폐라니까. 

신센구미는 정상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사람도 많아지고 일거리도 많아졌는데 재미는 덜하네요. 우리들한테 사사건건 시비거는 그 쪽이 있어야 훨씬 재밌는데... 곤도씨도 히지카타씨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데, 다들 말 수도 적어졌고 과격해졌어요. 나도 뭐 다르다고는 못하겠네요. 아, 어정번중쪽의 도움을 받아 그 때 습격했던 닌자는 썰어버렸어요. 한 명은 남겨놨는데, 죽어가고 있으니까 더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으면, 돌아와서 손수 멱을 따주지 그래요? 형씨는 다정하니까, 이렇게 하면 빨리 돌아올 수 있으려나.

아, 카츠라 그 자식은 매일 형씨를 보러와요. 양이활동도 계속하는데, 이 주변으로는 오지 않는 걸 보면 나름 기특하긴 해요. 여기가 성지라도 되는 것 같다니까. 이 공간에서만큼은 사이좋은 척이라도 하면서 지내고 있으니까. 큭, 다 형씨가 원하던 상황아니에요? 그런데 왜 당사자가 일어나질 않는거야.


남자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눈물이 마르지 않은 얼굴로 애타게 긴토키를 부른다. 대답이 없는 그가 답답할 법도 하지만 눈에 맺힌 은발머리와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은 영상이 서글프도록 아파서, 부르고 또 불러도 대답이 없는 사람을 토혈할 것같은 모습으로 불러댄다. 


" 자기혐오도 작작하란 말입니다. 작작 하시란 말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형씨에게 기대는데, 왜 아무한테도 기대지 않고 그렇게 쓸쓸하게 혼자 가려고해요... "


애끓는 목소리가 울린다. 여전히 대답없이 평온한 얼굴은 그 누구의 방해도 원치 않는 듯 모두에게서 방벽을 세우고 쓸쓸히 잊혀져가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해결사는 카부기쵸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한적할 것만 같은 병실은 2년이 넘게 수 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져 문턱이 닳아질 지경이다. 모든것을 감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그렇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자꾸만 떠나려고 하는 긴토키라는 남자가 미치도록 아프고, 미치도록 화가 날 뿐이다. 


" 형씨. 이젠 그쪽이 벽을 무너트릴 차례에요. 남의 벽은 잘만 뚫고 오더니 왜 그쪽 벽만 그렇게 두꺼운거래요. 이젠 우리에게도 기회를 달라구요. 나에게도 기회를 좀 달라구요. 그러니까, 일어나요. 형씨. 다들 기다리잖아. "


남자의 눈물이 침상에 떨어지고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긴토키의 얼굴에는 아주 희미하지만 미소가 피어난듯 온화한 얼굴이다. 항상 웃고,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 모든 것을 안고 가려는 사람. 자신이 죽어도 남이 죽는 꼴은 보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곁에 있어주고 싶고, 곁에서 받쳐주고 싶은 사람. 모두와 함께 있어도 고독한 사람. 고독함과 외로움에도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 자신은 상상도 못할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있어 죽음은 어쩌면 안식일지도 모르겠지만, 살아가는게 행복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게 남자, 오키타 소고의 본심이었다. 


" 다시 올게요. 그 때는 그 썩은 눈으로 맞이해주시는 겁니다. "


갈색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채 일어선 소고는 느릿하게 병실을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히사미츠 하나코가 소고에게 손수건을 건네곤 아무 말도 없이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오타에 들어가고, 오토세가 들어간다. 그 뒤를 이어 카구라와 신파치가 들어간다. 들어가서 하는 일은 따로 없다. 단지 평소와 같이 떠들고 해결사에 있었을 때처럼 장난을 칠 뿐이다. 그 사이에서 사카타 긴토키라는 남자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평범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흐르는 눈물을 감춘채 모두가 행복하게 웃음지어보일 뿐이다.


그때 급박한 소리와 함께 조용히 닫혔던 문이 빠르게 열리고 들어갔던 이들이 빠르게 나오며 의사를 찾는다. 남자도 드리웠던 가면을 벗어던지며 풀린 동공으로 불안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며 재빨리 병실로 들어가니 평온하기만 했던 긴토키의 얼굴에 괴로움이 가득차며 거칠게 숨을 들이 내쉬는 모습이 보인다. 남자의 손이 미친듯이 떨리고 불안한 동공이 흐려지는 영상을 간신히 잡아내며 긴토키에게 다가선다. 그런 남자를 밀치고 한 무리의 의사들이 들이닥치며 긴토키의 상태를 확인한다. 어물쩡거리며 확신을 내리지 못하는 의사의 멱살을 잡아채며 고함을 내지르는 남자는 광기어린 눈으로 의사를 바라보며 윽박지른다. 살기가 가득한 그의 협박에 의사는 오줌을 지리면서 뒤로 물러서고 환자에게 위험하다는 이유로 오타에를 따라온 곤도가 소고를 뒤로 물린다. 그제서야 살기를 거두며 긴토키에게 자신의 행동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까 발을 동동구르며 걱정을 한다. 의사는 경황이 없는 와중에 긴토키를 진찰하고, 그에게 끼워진 산소마스크를 떼어내며 뒤로 물러선다. 


" 아마, 의식이 돌아오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호흡이 엉켜... "

" 의식이 돌아온다고? "

" 네, 몸은 긴 치료 끝에 회복세에 이르렀으나, 본인의 의지가 없어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떠한 연유에서였는지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모두의 눈이 고르게 숨을 쉬고 있는 긴토키에게 꽂힌다. 전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하고 창백한 얼굴에 약간이나마 혈색이 돈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손가락부터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끝이 살짝 움직이자 침대에 모두가 달라붙어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손가락을 까딱이자 큐베와 하세가와씨, 사루토비와 카츠라등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근 하루가 지나자 모두가 숨죽인 상황 속에서 살랑이며 바람이 은발머리를 흩트러놓는 순간 긴토키의 눈가가 살짝 미동을 보이다 천천히 붉은 눈을 세상에 다시금 드러냈다. 눈이 부신지 한참을 찡그리고 있었으나,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전과 다를바가 없는 사카타 긴토키. 해결사 긴토키가 맞았다. 그 누구도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저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설움에 북받쳐 오열하고 얼싸안으며 울었을 뿐이다. 


" 형씨... 환영합니다. 지옥같은 현실이지만, 다시 돌아오신걸... 환영해요. "


남자의 입에서 끊어지듯 말이 흘러나온다. 붉게 충혈된 눈이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던 붉은색 눈이 주위를 둘러보다 남자를 바라보고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피워올린다. 그 눈이 마치 이렇게 이야기라도 하는 것 같다.


오랜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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