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이X긴토키X오키타 



놀이공원

(완)



긴토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미간에는 골이 깊게 패이고, 하얀 얼굴은 창백하게 얼어간다. 얇게 뻗은 입술이 씰룩이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음영이 명확한 붉은 홍채가 자기보다 작은 주홍색 머리를 한 번 바라보고는 앞을 한 번 바라본다. 또 다시 내쉬는 한숨. 짜증이 그대로 섞여나는 듯한 한숨소리에도 주홍 대가리는 헤실거리며 웃을 뿐이다. 그런 얼굴을 보며 뭐라 입을 털지는 못한다. 손을 옥죄는 하얀 손이 무섭기도 했고, 저만 보면 그리 웃는 딱 키도 고만한 남자 아이가 하나 생각나서. 이게 다 긴상이 잘난 탓이지. 어쩌겠어.

 

무서우면 말해. 손에 식은땀이 축축한데.”

아니? 안 무서운데? 긴상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런 유치한 거에 긴상이 무서워할 것 같아?”

그럼 혼자 들어가봐.”

어이, 긴상이 그대로 도망칠거란 생각은 해본 적 없어?”

별로. 도망치는 놈을 잡는 데는 이골이 나서. 지구를 폭파해서라도 찾아줄테니까 걱정마.”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변해 저려오던 손이 놓여지고, 카무이의 생글거리는 미소가 긴토키를 향한다. 말이야 좋아 도망칠까봐 잡고 있다고 하지만, 실은 그 건조한 피부가 손목을 잡은 손을 빨아들이는 것 같아서, 그 감촉이 좋아 붉게 변한 허연 피부를 그리도 잡고 있었을 뿐이다. 태양에 밀려나는 저의 종족적 특성과는 달리 태양의 따스한 온기를 그리는 것처럼. 하지만 이런 말 하면 그는 도망치고도 남을 테니까, 가장 잘 들어먹히는 협박이라는 말로 구슬릴 따름이다.

 

긴토키는 약간 찡그린 얼굴로 자기가 못 들어갈 줄 아냐며 천천히 그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귀신의 집을 향해 들어섰다. 귀곡산장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괴기스러운 공간으로 그것도 제 발로 입장하는 기분은 말해 뭐할까 싶다. 은발이 암흑에 젖어들고 넓은 보폭이 좁게 줄어드는 동안 카무이는 반달 모양의 눈으로 뒤를 돌아본다. 숨는다고 숨었지만 찰랑이는 갈색머리와 슬슬 올라오는 담배연기는 대놓고 자신의 위치를 들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와 같이 있는 자신에 대한 조용한 항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보지만, 그래봐야 지들이 자신을 어떻게 막느냐는 자신감이 있다.

 

약한 자는 결국 강자에게 모든 것을 뺏기는 법이라고나 할까.”

 

반달 모양으로 그린 듯이 휘어진 눈이 그들을 흘긋 바라보고는 유카타 자락만 남기고 어둠으로 사라진 남자의 뒤를 좇는다. 무서워하는 그의 장난감이 사라진 곳을 향해 초를 재다가 천천히 카무이 역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어둠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보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 손에 드리워진 죽음의 깊이는 결고 얕지가 않아서, 만일 자신이 죽인 자들이 저리 어둠을 틈타 제게로 다가온다 그리 상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고 소름이 돋아와서. 그래서 자꾸 기피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망자들을 어르며 품은 어둠은 산자에게는 그다지 친절한 존재가 아니니까. 더군다나 저와 함께 전장을 누비다가 서늘한 시체들 사이에 몸을 눕힌 동료들이 귀가 되어 살아있는 자들 사이에 나타나게 된다면, 제 손으로 그 동료를 베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또 다시 고통을 받게 될 동료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져서. 도무지 감내할 수가 없다.

 

차라리 묵직하게 많은 사람들을 올려놓은 어깨에 망자들마저도 올려놓고 그들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 하겠지만, 원념만이 남아 귀가 되어 돌아다니는 이들의 책무를 이어받고 그들을 성불시켜줄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없어서. 그 무능력이 어둠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귀를 피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두툼한 목줄기에 소름이 훅 돋아왔다. 어둠이 그리는 잔영은 행복이나 슬픔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무감정한 살육. 그의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이자, 부모를 잃은 곳. 그리고, 구원을 제 손을 베어낸 곳. 전장.

 

역시 귀신을 무서워한다는 정보가 틀리지 않았네? 겨우 여기까지만 온 거야?”

 

발랄한 그 한마디에 어둠이 사라지고 공간 가득히 분장한 귀신들이 눈에 들어온다. 식겁할 정도로 징그럽게 분장한 귀신들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고함이 뱉어진다. 아니,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지. 한참 딴 생각하다가 눈을 떴는데 눈 앞에 귀신이 대놓고 있다고 생각해봐. 놀라지 않고 배겨? 무서운 게 아니라 놀란거라니까. 앞에서 한 말이 허풍이나 변명이 아니라니까. 그냥 놀란거라고. 놀란거. 무서운게 아니라고. 내가 왜 무서워 해. 귀신 따위를. 응응 그렇지.

 

아닌데? 크흠. 천천히 즐기려고 한 건데?”

그럼 빨리 앞장서 가지그래 뒤에 사람들이 못 지나가고 있잖아.”

뒤의 사람들을 걱정한다면 같이 가야지.”

무서우면 말해. 손이라도 잡아줄테니까. ?”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카무이는 무섭지 않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긴토키의 손을 가볍게 쥐며 소름 돋아하는 그에게 꽤나 다정스레 웃어보였다. 손에 잡히는 하얀 피부를 단단히 잡고 앞으로 움직이자, 약간씩 움찔거리며 귀신이 나올 때 마다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러댄다. 그 사이를 노려 살짝 몸을 떼자 온기에 끌리는지는 몰라도 이쪽으로 달라붙어 오는건 나름대로 유혹이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라 해도. 그가 자각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리고 뒤에서 오는 이들의 살기가 고스란히 제 뒷통수에 박힌다고 해도.

 

손에 가득히 잡힌 하얀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든다. 긴장한게 아니라며 지껄여대지만 이미 목소리는 통제를 잃고 쉼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인데, 재미있어. 어쩌다가 사부에게 대들 생각까지 하셨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를 줄일까 하면서 보폭을 줄이자 계속 긴장하며 몸을 붙여오던 긴토키가 딱 그 자리에 선다. 약간은 이성을 잃은 듯한 적안이 벽안과 마주친다. 부들거리는 입가에서 조만간 터져나올듯한 고성을 기대하며 한 쪽 귀를 막지만 순식간에 몸이 붕 뜨면서 순식간에 많은 장면들이 지나간다.

 

저기? 형씨? 지금 뭐하는거야?”

하나도 안 무섭다고!!!!!!”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괴력을 발휘한다고 하던가. 손목이 얼얼할 정도로 잡힌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려다보는 손아귀와 손목에 붉은 자욱이 깊게 남아 욱신거려온다. 낙인. 그가 제게 찍은 낙인인 것 같아 습관적으로 올려붙이던 미소와는 달리 입가가 기괴한 모양새를 띈다. 헐떡이며 잠시간 두려움에 떨고 있던 긴토키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으나 약간의 오한이 돋는다며 팔을 삭삭 비빈다. 한동안 제 손목에 남은 붉은 자욱을 바라보고 있던 카무이의 상념을 등덜미에 뜨듯한 햇볕이 적셔들며 깨운다. 순식간에 귀신의 집 초반부에서 중후반을 건너뛰고 옆구리를 뚫고 나올 줄은 몰랐건만 주위는 미친 듯이 내리쬐는 태양빛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피부가 극히 당겨오며 그를 인식한 순간 속이 거북해진다.

 

하여간 인간들에게나 다정하지. 형씨,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줄래? 우산 좀 가져오게.”

 

출구로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입구 근처에 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달까. 미소를 지우지 않을 상태로 약간의 짜증을 표출하며 입구로 향하는 카무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얀색 유카타. 언제가 그가 두르고 있던 하얀색 유카타가 긴토키에게는 없고 제 머리 위에서 하느작거리고 있다. 코 끝까지 풍겨오는 단내와 언제나 그에게서만 나던 비누향이 가득하다. 의아한 눈으로 돌아보지만 긴토키는 고개를 살레살레 저으며 갔다 오라는 듯 손 짓만 할 뿐이다.

 

?”

카구라의 바보 오빠니까. 카구라라면 이렇게 해줬을테니까.”

웃긴 인간이네.”

놀이동산에 데려온 작자도 웃긴 인간이지. 다 큰 남자가 놀이공원에서 뭘 한다고.”

큭큭. 하여간 정이 많다니까.”

 

거의 유일하다 싶은 형씨의 약점이잖아. 정이 많아서 다 죽어가는 인간이라도 살리려고 달려드는 거. 그러면서 아직까지 안뒈지고 살아있는게 신기할 정도야.

안 그래도 한 번 죽다 살아났다. 빨리 갔다 와. 넌 피부껍질이 두꺼워서 안 추운지 몰라도 긴상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뼈마디가 시리니까.

 

매정하기 짝이 없는 말투에 건조한 눈빛이 무심한 듯 보이나 단내가 물씬 풍겨오는 옷처럼, 무심한 껍데기 속의 그는 달콤하고 정이 많다. 그리고 여리디 여려서 그를 향한 협박은 안 통해도 주위 사람을 향한 협박은 너무나도 잘 통하지. 참 재미있는 사람이야.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까지 이타적일 수 있는거지. 자기학대나 다를 바가 없잖아.

 

얼굴을 유카타로 가린 채 긴토키가 터트리고 나온 옆구리로 다시 들어가려 하자마자 똑같은 루트, 똑같은 방식으로 시커먼 머리통 하나가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갈색머리의 꼬맹이가 하나 모습을 드러낸다. 감정이 메마른 적빛의 눈동자가 카무이를 직시한다. 기이하게 풀린 벽안이 그 눈빛을 맞이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건넨다.

 

무슨 버러지길래 이런 미천한 지구까지 강림하셨습니까. 하루사메께서? 발바닥이라도 핥으려고?”

강한 건 좋지만, 자기 능력도 모르고 덤벼드는 건 별론데. 아예 싹을 밟아버려야 그런 쓰레기는 자라지 않으려나?”

버러지 하나 묻어버릴 능력은 된다고 생각하는데?”

입만 살아서 나불거려 봤자, 지키지도 못하면 위협도 시도하지 말아야지.”

 

오가는 말은 밥 한끼 하자는 양 가벼운 어투였으나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허리춤에 걸린 검으로 손을 뻗은 소고와 자세를 취하며 살의를 숨긴 미소를 보인 카무이의 대립. 하지만 그 둘 모두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했다.

 

놀이공원이잖냐. 요녀석들아. 이런 곳에서 싸우면 못 써요.”

 

두툼한 팔이 두 사람의 목줄기를 감싸 안으며 품으로 훅 당겨왔다. 어쩌면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을 지도 모를 순간에 평범한 주변의 모습만을 눈에 담은 남자의 모습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단지, 단지 그 모습이 너무나 서글퍼 보였을 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그들과 함께하는 모습. 응석도 부리고 장난도 치고. 혼도 나고, 떼도 부려보는. 그런 모습. 긴토키라는 남자는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모습. 그렇기에 더욱 지켜주고 싶어하는 그런 모습.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 어떠한 소리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에 변화가 생기지도 않았다. 그들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만 하루정도는 그것도 그 공간 속에서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을 훼손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저 그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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