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무이X오키타

*소고시점



(단편)





어둡다. 답답한 어둠이 닥쳐온다. 답답하다. 갑갑하게 가슴을 누르는 억센 손길이 있다. 가물거리는 의식을 애써 잡아채며 실눈을 뜨니 희미한 빛에 근육질의 희고 투명한 피부가 시리도록 아름답다. 그리고 거북하다. 복부에 거북한 긴장감이 지속적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찾아온다. 발끝이 오그라들고 길지도 않은 손톱으로 갈가리 하얀 몸뚱아리를 찢어버릴 기세로 조흔을 남기지만 껍데기가 얼마나 두꺼운 건지 번번히 빗나가며 울화만 차올랐다. 씨발. 좆같은 기분을 어떻게든 배설해내고 싶은 마음에 아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입술을 오물거리며 간신히 한 마디를 던졌다.

“미친놈.”
“이제 알았어?”

턱턱 숨이 막히고 빛이 명멸하는 가운데 까무룩하니 의식이 안드로메다로 꺼져버린다. 차라리 다행인건가. 어울리지 않게 매달리는 짓을 맨정신으로 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

익숙한 소독약 냄새가 코 끝을 찔러왔다. 덕분에 내내 무겁게 당겨오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며 잠이 달아난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뻐근하게 당겨오는 목줄기를 주무르며 악을 쓰고 있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슬슬 싫증이 난다. 몰려오는 졸음 속에서 누가 살짝살짝 건들어대며 잠을 깨운다면 아무리 그 사람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빡치지 않을까. 아 물론 누님이 깨운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가볍게 주변에 있는 쇳덩이를 하나 들고 풀 스윙으로 던져버리고 나니 악을 질러대던 남자가 움찔거리다 그대로 목을 푹 수그린다. 살덩이가 짓이겨지며 가죽이 찢기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점점 무감정해지는 기분이다.

다시금 피로가 쌓이며 밤에 이루지 못한 잠이 몰려온다. 감히 수마를 이길 생각은 요 근래 꽤 피곤한 하루를 보냈던 내게 있을 리가 없다. 졸려 뒤지겠다. 히지카타 시체를 세고 있지 않은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하긴 셀 겨를도 없이 정신을 놓을 때가 많긴 했지. 하여간 체력만 미친 듯이 좋은 놈이랑 붙어먹어서 좋은 꼴을 못 본다니까. 짜증스레 머리를 뒤로 넘기며 딱딱한 고문실 장의자에 몸을 누였다. 딱딱한 곳에 닿으며 혹사시켰던 허리가 칼로 저미는 듯한 통증을 호소해왔으나 피로가 통증을 이겼다. 눈을 감자 살짝 주홍머리가 머리에서 스쳐 지나간다. 그 놈 덕분에 요새 지미의 위대함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잠도 안 자고 팥빵만 먹으며 잠복수사를 하는 지 몰라. 이렇게 졸려 뒤지겠는데.

안대로 완벽한 암흑을 맞이하고는 두 팔 벌려 잠을 반기며 그대로 꿈 속으로 빠져드려는 찰나에 거지 같은 히지카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악몽인가.

“소고. 일하는 중에 수면을 취하는 건 국중법도 위반이라는 걸 모르나.”
“히지카타씨. 솔직히 내 얼굴 보면 그런 말 안 나올텐데.”

무슨 소리야. 라는 헛소리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어 백문이 불여일견을 외치며 안대를 훅 내리자 수척한 낯짝의 히지카타가 보였다. 쟨 또 누구랑 붙어먹어서 저래 수척해졌대. 아 몰라, 귀찮아. 피곤하니까 츳코미 걸기도 귀찮아. 굳이 감겨오는 눈꺼풀을 올리려는 의지도 없고, 올리고 싶지도 않아 감기며 몰려오는 수마를 그대로 받아들이니 웅얼거리며 무언가를 외치는 히지카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내 귀에 그런 말이 들릴 리가 없다. 결국 그대로 취침장소로는 어울리지 않지만 누군가의 혈향이 짙게 풍기는 고문실에서 반쯤 정신을 놓으며 깊은 잠의 파도 속에 가볍게 다이빙을 했다.

-

아마도 좋은 꿈을 꿨던 것 같다. 꿈꿈하던 기분이 살짝 나아졌고 일어났을 때 피로에 의한 두통보다는 행복이 입가에 묻어났다. 빛이 비산하는 듯한 마지막 장면만이 눈에 박혀 기억에 남을 뿐 다른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차피 꿈일 뿐이니 굳이 떠올리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 꿈은 꿈일 때가 좋은 경우도 있으니까. 찜찜하게 허리를 자극하던 통증도 사라졌고, 움직임에 있어 불편함도 어느 정도 가셨다. 고문실에서 누워 잠들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노을이 저무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방 안이다. 아마 히지카타나 곤도씨가 옮기지 않았을 까. 그나저나 감이 많이 죽긴 했군. 누가 날 건드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잠에 들 줄은 몰랐는데.

더 누워있기엔 몸이 뻐근하기에 가볍게 침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노을이 지는 모습이 눈에 틀어박혔다. 저물어 가는 노을의 색이 무언가의 그리움을 자극했다. 두 번 눈을 깜박이고 돌아서자 사적인 감정은 심연으로 빠져들어 다시 기어 나오지 않는다. 오랜 살육의 세월 속에 일말의 감정은 노을을 보며, 누님이 좋아했고 은발머리가 좋아했던 노을을 보며 가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검을 쥐고 한적한 둔영 내를 가볍게 돌아다니다가 고문실로 향한다. 눅눅한 문을 열고 들어가 가볍게 주위를 살피니 여전한 소독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아마 몇은 여기서 죽어나갔을 것이고, 몇은 치료를 받으며 제 동료의 위치를 팔고 목숨을 구걸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어두침침한 공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냄새가 기묘하게 어우러지며 전혀 다른 목적의 시설인 병실을 연상케한다. 갈변해가는 붉은 색과 하얀색의 조합이라.

답지도 않고 기괴하기 짝이 없는 감성을 집어치우고 취조하며 작성했던 보고서를 챙겨 나온다. 뒤에서 움틀거리는 기척이 느껴지지만 굳이 돌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입을 조금 더 일찍 연다면 살 수 있을 것이고, 객기를 부린다면 그대로 모가지가 날라갈 자다.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패기와 기상은 인정해주겠지만 결국 적에 불과한 인간, 아니 숨을 쉴 수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살덩이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연민이 덜 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도 오래다. 확실히 이 직업은 오래는 못할 직종이다. 사람의 감성이 바닥나다 못해 가뭄이 들게 만드니까. 그렇다고 벗어나지도 못하지. 벗어나는 순간, 일반인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광인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르니까.

보고서를 훑어보고 대충 히지카타의 책상에 던져 놓고는 순찰 순번을 확인해보니 지금 이 무렵 순찰 책임자의 이름에 오키타 소고와 히지카타 토시로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고민하는 척을 하지만 결국 굳이 귀찮게 그것도 이미 시간도 늦었는데 나가기 귀찮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히지카타가 뭐 다 돌고 오겠지. 난 피곤해서 자느라 못 일어났다고 하면 되는 거고. 굳이 두 명이 다 나갈 필요는 없지 않나. 아아, 요새 히지카타 시체 소환술도 실행하지 않고 있는데 오늘 하루 째도 뭐라 하겠어. 한 두번도 아니고.

가볍게 몸을 돌려 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돌아가니 기시감이 느껴졌다. 본능적인 직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날카롭게 감각을 세우며 방문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지만 이내 억센 손아귀 힘에 잡혀 그대로 안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그 억센 힘의 주인공을 알고 있기에 온몸에 둘렀던 긴장감을 한순간에 풀어버리고 단지 짜증이 가득한 눈으로 침입자를 바라본다. 침입자의 머리는 주황색, 피부는 하얗다 못해 투명하고, 눈은 푸른색이다. 태양을 마주하지 못한다는 야토주제에 태양의 색을 머리에 담고 하늘의 색을 눈에 담았다. 오질나게 짜증나는 놈이다.

“카무이.”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고 그래. 내가 여기 있어서 감동이라도 받은거야?”
“작작 좀 찾아오시죠. 서로 어느 정도의 위로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이젠 좀 쉬고 싶은데요.”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데? 착각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너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눈매를 휘어보이며 해사하게 웃는 모습이 생각보다 다정해보인다는 시덥지 않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해맑은 아이 같은 미소지만 살의를 지녔을 때만 피어오르는 살인자의 미소. 하여간 더럽게 짜증나는 놈이다. 저 미소도 그렇고 눈깔도 그렇고. 뽑아버리고 싶어.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어. 단지 그 때, 미치도록 무감각해서 내 스스로가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이대로 가다간 자결을 시도할 것 같아서 두려움에 가득했던 때에 네가 지나가지만 않았다면. 내 앞에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너 같은 버러지를 살려두지는 않았을 텐데. 버러지 같은 인생이네. 미간에 짜증이 배이고 손에는 검이 쥐어지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기 위해선 네가 필요하다. 육체적인 욕구를 해소하며 느끼는 쾌감과 성욕에 달뜬 표정을 지을 때의 수치심, 그리고 잔인하게 혀를 굴리며 능욕하는 짜증나는 혓바닥을 조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찰 땐 적어도 지루한 인생을 그대로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까.

너에 대한 살의로 가득 차 널 난도질치기 전까진 눈을 감지 못할 것 같으니까, 그걸로 스스로 내 목숨을 끊을 정도의 무상함은 어느 정도 해소되니까. 그래서 오늘도 입으로는 짜증을 씨부리면서도 네 손에 순순히 몸을 맡긴다. 억센 손아귀가 퍽이나 다정하게 맨 살을 쓸어내리고, 단단한 허벅지로 이 쪽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켜도 굳이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노을 빛에 적셔져 붉은 색으로 물들어 버린 그의 몸을 조흔을 남기려 노력하며 짧은 손톱으로나마 난도질하는 시늉이라도 할 뿐. 결국은 내 무심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욕구를 풀어내기 바쁜 이 작자를 멈출 의지도 멈출 힘도 없으니까. 그저 조금 피곤할 뿐이다. 아아, 이렇게 피곤한 날엔 히지카타에게 타바스코나 먹이고, 마조 하나 잡아서 사육해야 피로가 풀릴 텐데.

입 맛을 쩝 다시며, 몰려오는 육체적 쾌락에 미간을 찌뿌린다. 입 안이 바싹 마르고 내려앉아 생경하게 들리는 내 목소리는 한껏 비음을 섞은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잠식이다. 쾌락에 잠식되면 잠시나마 이 피로가 물러가고, 끊임없는 무상함이 모습을 감추고, 지칠 대로 지친 정신이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까. 입으로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머릿속은 한없이 지루하고 맥 빠지는 생각들이 지나간다. 이를테면 내일도 피곤할 것 같다던가, 내일도 허리가 꽤 뻐근하겠다 싶다던가. 타바스코는 약한 것 같으니 캡사이신을 하나 구매해야겠다는 것과, 짜증나는데 이번에 알아낸 양이지사 쪽에 폭탄이나 설치해둘까 하는 시덥지 않은 생각들. 오히려 떠올릴수록 흥분상태에 놓인 육체와 비교되어 맥이 빠진다.

아아, 정말 피곤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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